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바둑 대국도 비대면 온라인 대국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온라인 시스템 오류로 시간패를 당할 뻔한 사상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 20일 오후 열린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2국 도중 벌어졌다. 박정환 9딘과 중국의 판팅위 9단은 각각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대국장과 중국 베이징 천원TV 스튜디오에서 온라인으로 대국을 진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정환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백 158수를 놓을 때 여덟반에 마우스로 착수했지만 컴퓨터상에 입력되지 않아 시간패가 선언된 것.
바둑TV 중계 화면에는 박정환이 커서를 착점 위치에 놓고 수차례 마우스를 클릭하는 모습이 나왔다. 초읽기 여덟과 아홉 사이에 ‘딸깍’ 소리가 났고, 아홉과 열 사이에도 수차례 클릭 소리가 들렸다.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자 한국기원과 중국위기협회, 일본기원은 비디오 판독에 들어갔다. 한국 측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시간패 선언이 나왔기에 재대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기원은 박정환의 착점이 초읽기 내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비록 시간 내에 마우스를 클릭했더라도 그 결과에 따라야 한다”고 맞섰다.
한·중·일 기원은 약 2시간 동안 시간패 인정 여부에 대해 논의를 벌였고, 결국 조율을 통해 12국을 처음부터 다시 두는 재대국 제안을 박정환이 수용하면서 일단락됐다. 박정환과 판팅위은 21일 오전 10시에 재대국을 펼쳤고, 박정환이 189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박정환은 대회 3연승을 달리며 연승상금 1000만원을 챙겼다.
이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이런 사고가 나면 온라인 스포츠를 진행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게다가 당시 대국은 박정환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인공지능 분석에서도 박정환의 승리 확률이 92% 이상으로 나왔고, 해설자 역시 박정환의 여유 있는 승리를 예상했다. 이 때문에 “중국 해커들의 소행”이라는 의혹까지 나오기도 했다.
한편 해당 사태에 대해 한국기원은 21일 “주최사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이번 사태로 실망하셨을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중 기사들과 바둑 팬들, 후원사인 농심 측에 사과의 입장을 전했다.
최승우 온라인 뉴스 기자 loonytuna@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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