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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 시대가 온다면… 과연 더 행복할까

입력 : 2020-08-17 03:00:00 수정 : 2020-08-16 18: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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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장기·로봇공학·인공지능·나노기술… ‘죽음’ 걱정없는 250살의 미래인간 빅터
불평등한 세상에서 삶 때때로 죄책감 느껴… 트랜스휴머니즘이 불러올 머지않은 미래
인류, 로봇의 의무·책임에 아직 대비 못해… 모든 의문 근본엔 ‘인간의 본질’이란 주제
이브 헤롤드/강병철/꿈꿀자유/1만7500원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브 헤롤드/강병철/꿈꿀자유/1만7500원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 불러올 머지않은 미래에 관한 우리 삶의 변화를 설명하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단어는 1957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의 저서 ‘계시 없는 종교’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신념이나 운동을 말한다. 트랜스휴머니즘 사상가들은 생명과학과 신생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 이른바 불로장생의 시대는 가능할까.

미국의 과학저술가 이브 헤롤드의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인공장기, 로봇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보여준다. 책에서 소개하는 미래 인간 빅터를 보자. 30대로 보이고 자신도 그렇게 느끼지만 사실 그는 250살이다. 50대와 60대에는 심장병을 심하게 앓았지만, 이제는 마라톤을 뛸 수 있을 정도로 힘과 활기가 넘친다. 인공심장 덕분이다. 제2형 당뇨병에도 걸렸지만, 100년쯤 전에 인공췌장을 이식받아 완치됐다. 사고로 한쪽 팔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 힘도 훨씬 더 세진 그의 팔을 인공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자는 “목전에 와 있는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필요한 철학적 윤리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개인과 사회는 이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지금 이대로라면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에 의해 인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한쪽 눈에 낀 콘택트렌즈를 통해 자기 몸과 주변환경에 대한 정보를 전송받는다. 수명이 다한 망막세포를 컴퓨터 칩으로 교체하지 않았다면 벌써 오래전에 앞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원할 때는 언제라도 음성명령을 내려 인터넷에 접속한다. 빅터는 젊을 때보다 더 건강하고 몸매도 좋을 뿐 아니라 선대의 누구보다도 영리하다. 뇌 속에 신경을 이식받아 뇌 기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통해 기억을 확장하고, 언제라도 지식을 다운로드받는다. 심지어 판단을 내릴 때도 도움을 얻는다. 250살이라면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빅터는 죽음을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수십억 개의 나노로봇이 몸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질병이나 노화로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고, DNA 복제 오류를 복구하며, 암세포는 눈에 띄는 즉시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책은 타고난 것보다 더 튼튼한 심장, 완전 체내이식형 인공 폐, 인공 신장, 인공 간 등 놀라운 장기들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그렇다면 ‘죽지 않는 세상’에선 행복할까. 책은 빅터를 다시 들여다본다. 100년이 지난 지금, 빅터는 자신을 젊고 건강하며 생산적으로 만들어준 다양한 첨단기술에 다시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는 로봇이다. 로봇이 필요한 것들을 모두 해결해 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 일레인이 그립다. 일레인은 의학기술을 통한 수명을 늘리는 것을 포기한 채 난소암으로 숨을 거뒀다. 그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그토록 오래 사는 데 대해 때때로 죄책감을 느낀다. 심각한 사고를 당해도 인공 신체부위 덕에 거의 틀림없이 살아남을 것이다. 죽기를 원한다고 해도 생명유지 장치를 꺼줄 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런 행위는 살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정기적 회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생체공학적 이식물들이 서서히 고장 나기를 기다려 비참한 노화와 죽음을 맞는 것이다. 죽기까지는 수십년이 걸리며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고비를 겪을 때마다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헤쳐 나온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언제부턴가 그것이 하나의 덫처럼 느껴진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표적인 생명보수주의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아이디어’로 꼽기도 했다. “끔찍한 도덕적 비용을 치르게 될 줄 모른 채, 생명공학이 제공하는 너무나 매혹적인 열매들을 조금씩 맛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트랜스휴머니즘의 첫 번째 희생양은 인간의 평등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미래인간 빅터처럼 살면서 누구나 겪는 위기를 맞아 절박한 선택을 할 때마다 조금씩 기술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후쿠야마의 말처럼 능력이 강화되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근본적인 차원에서 불평등을 겪게 될 수 있다. 사회 일부가 더 힘이 세지고, 머리가 좋아지고, 건강해지고, 더 오래만 산다면 인류가 평등하다는 생각이 엷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두고 철학자들은 인간이 무엇이냐는 논쟁을 계속하겠지만, 이미 로봇은 법적 권리와 책임을 급박하게 정의해야 할 정도로 온갖 영역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로봇을 법적 개인으로 인정할 것이냐는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이미 로봇들은 주식을 거래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키며, 아마존과 이베이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군사작전을 수행하며, 의료보험 수급 자격을 심사한다. 그런데 인류는 로봇의 법적 지위와 윤리적 책임이란 문제에는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은 점점 빠른 속도로 우리의 철학적인 법적인 의문을 앞질러 가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지적했듯이 “융합기술의 발전이 어떤 한계점을 넘으면 기하급수적인 변화가 수반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변화가 눈앞에 펼쳐질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 시대가 초래할 질문을 미리 제기하고 그 대답을 강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랜 수명을 누린 후 우리는 자기 뜻에 따라 인공장기의 작동을 멈출 수 있을까”, “인공장기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누가 관리해야 할까”,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나고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까”. “로봇의 의무와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와 같이 만만찮은 질문들이 제기된다.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했던 주요 인물들의 사상을 요약하고 비판하면서 이 모든 의문의 근본에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궁극의 주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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