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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 7번 찍혔는데 몰랐다…말뿐인 ‘철통경계’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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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01 12:00:00 수정 : 2020-08-01 1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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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김씨의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의 내부 모습이 보이고 있다. 군 당국은 김씨가 배수로 내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철조망을 뚫고 헤엄쳐 월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화=뉴스1

지난달 18일 탈북민 김모(24)씨가 월북하는 과정에서 군이 저지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놓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 경계태세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합참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같은달 18일 오전 2시46분쯤 인천 강화도 강화읍 월곳리 연미정 인근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해 한강으로 빠져나간 뒤 조류를 타고 헤엄쳐 오전 4시쯤 북한 황해북도 탄포 지역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미정 인근 소초 감시카메라 녹화 영상에서는 김씨로 추정되는 표적이 한강을 건너가는 모습이 5차례 있었고, 열상감시장비(TOD)도 북한쪽에서 김씨로 보이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으나 경계병들은 김씨의 월북을 알아채지 못했다. 

 

김씨가 택시를 타고 2시18분쯤 연미정에 도착했을 때, 200m 떨어진 민통선 초소에서는 택시 불빛을 보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배수로의 장애물은 낡고 훼손돼 제 기능을 못했지만, 해당 부대는 배수로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에서 “(26일 북한 보도 1시간 후인) 오전 7시쯤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의 전화를 받고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군 수뇌부는 김씨의 월북을 뒤늦게 알았다. 경계태세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달 28일 오전 인천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이 보이고 있다. 강화=뉴시스

◆“개선하겠다”고 하지만…반복되는 문제들

 

‘감시장비에는 포착됐으나 경계병들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강화도 월북 사건 관련 군의 설명은 경계실패 논란이 제기될때마다 나왔던 문구다.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의 강원 삼척 입항 사건 당시 북한 목선이 해안레이더에 포착됐지만, 운용 요원은 반사파로 오인했다. 태안 밀입국 보트는 해안복합감시카메라에 4회, 열상감시장비(TOD)에 3회 포착됐으나 낚싯배와 일반 레저용 보트로 판단했다.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씨(24)가 강화도 접경 지역을 통과했을 당시 포착된 영상을 군 당국이 분석중인 가운데 지난달 28일 김씨의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에서 주민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강화=뉴스1

군은 야간 해안 경계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해안 경계 경험이 있는 군 관계자는 “야간에 TOD로 해안을 정찰해도 보이는 게 거의 없다. 특이한 부분을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군이 강화도 월북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감시카메라 영상에는 스티로폼 등 부유물과 김씨로 추정되는 흔적의 크기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운용병의 판독 능력과 집중력이 경계태세를 좌우한다. 감시장비에 매우 작은 크기로 나타난 표적이 통나무인지 남파공작원인지를 단시간 내 파악하려면 전문지식과 경험이 필수다. 

 

감시장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할 수 있는 집중력도 필요하다. 고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이며 성취감도 없는 경계작전은 장병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이상적인 환경에서도 장기간의 집중력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반복되는 일과와 경계근무는 병사들의 경계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김씨가 이용한 배수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은 해당 부대 장병들의 경계 집중도가 흐트러져 있었다는 의미다.

 

서북도서방어훈련에서 해병대 6여단 장병들이 적 침투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며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해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합참도 이를 인식한 듯 강화도 월북 관련해 감시병 교육 강화 등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감시장비 영상 판독 지식은 경험에 의해 획득된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강화도 월북 감시카메라 영상도 숙련된 군 감시장비 전문가가 녹화영상을 수차례 반복 확인해서 김씨로 추정되는 부분을 식별했다. 감시병 집체교육이나 자격평가 인증제 등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운용병의 판단을 지원할 인공지능(AI) 경보시스템 구축이 더 낫다는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공교로운 시점에 장비가 고장이 나는 것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합참은 조사과정에서 TOD 영상이 삭제된 사실을 찾아냈다. 조사 결과 TOD 담당자가 지난달 23일 녹화 기능 장애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23일 이전 영상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김씨가 월북하던 장면 일부도 소실됐다. 촬영 영상이 본부 서버로 실시간 자동저장되는 네트워크영상저장장치(NVR)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합참은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고의가 아닌, 전송프로그램이나 케이블 오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예전에도 그런 일(장비 오류)이 있었다는 것은 TOD 점검이나 사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영상장비 운영관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군 장비가 제 역할을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 4월 태안 보트 밀입국 당시 TOD 내 저장된 영상을 녹화장치로 보내는 변환기 고장으로 밀입국 장면이 녹화되지 않았다. 지난 5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 당시 KR-6 중기관총은 공이 손상으로 격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군의 장비 운용과 유지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이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만 책임있나

 

합참은 이번 월북 사건의 책임을 물어 이승도 해병대사령관과 최진규 육군 수도군단장을 엄중 경고 조치하고, 해병대 2사단장을 보직해임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월곳리 일대 작전 및 지휘체계는 해병 2사단→육군 수도군단→지상작전사령부로 되어있다. 그런데 해병대사령관은 경고를 받았지만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은 경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삼척 북한 목선 입항 당시 합참의장과 지상작전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이 경고를 받고 8군단장이 보직해임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를 두고 해병대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해병 2사단이 짊어진 군사적 부담 때문이다.

 

한강 하구와 인접한 김포,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은 해병 2사단이 관할한다. 경계구역이 255㎞에 달한다. 북한군과 대치하는 전선의 길이만 따져도 80㎞ 안팎이다. 휴전선 일대 육군 사단보다 훨씬 길다. 수도권과 인접해 있지만, 경기 고양, 파주 등 한강 북쪽의 경기 서북부 지역을 육군 1개 군단이 담당하는 것과 달리 김포와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은 해병 2사단이 떠맡고 있다. 그만큼 경계작전에 대한 부담이 크지만, 병력 규모는 육군 사단과 별 차이가 없다.

 

감시카메라와 광망 센서 등으로 구성된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있지만, 최종적인 결정과 대응은 사람의 몫이다. 지켜야 할 지역이 넓으면 사람도 그만큼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병들의 경계근무 부담이 높아진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쉴 틈 없이 반복적인 경계근무를 하게 되면 스트레스와 피로가 높아지고, 교육훈련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도 어려워진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선 병력 증원과 부대 재배치 등 근본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방개혁 2.0에 의해 병력 감축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해병대 정원 증원은 쉽지 않다. 해병 2사단을 후방으로 재배치하고 육군 사단으로 대체하는 방안은 예전부터 거론됐으나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논란이 적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모든 부분의 무한 책임을 국방장관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군에서 경계작전은 가장 기초적인 작전이다. 그만큼 엄정한 근무기강이 요구된다. “또 뚫렸냐”며 질타를 할 수도, “그럼 그렇지”하며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지만, 해당 부대가 제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무기강은 충실한 인적, 물적 지원이 뒷받침되고, 상과 벌이 분명할 때 바로 세워진다. 삼척 북한 목선 입항 이후 우리 군의 행보를 돌이켜보고 교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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