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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2차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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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14 22:57:44 수정 : 2020-07-14 22: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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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최근 안 전 지사와 충남도를 상대로 ‘2차 가해’에 따른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수사와 재판 때 안 전 지사 지지자들이 “안 전 지사 부부가 자고 있는 방을 들여다봤다” “안 전 지사와 단둘이 와인바에 갔다” “나중에 어떻게 사는지 보자. 제 습성 못 버릴 거다” 같은 악의적인 말을 퍼뜨려 엄청난 고통을 줬다는 것이다. 안 전 지사 측의 2차 가해 방조로 인해 불면증, 대인기피 같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에 시달린다고 했다.

유명인이 연루된 성폭력 사건일수록 피해 조사과정에서 온갖 뒷말이 떠돌아다닌다. “야한 옷을 입어 원인을 제공했다” “성폭력이 아니라 사실상 불륜이다” 등 피해자 행실이 좋지 않다는 소문을 퍼뜨려 ‘여론 재판’을 한다.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신상을 공개한다. 권력을 쥔 가해자 편에 서서 화해를 종용하는 일마저 벌어진다.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의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여권의 극성 지지자들은 온라인상에 “이순신 장군이 관노랑 잠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말인가” “속옷 프레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마치 작전을 펼치듯 피해자 신상도 털고 있다. ‘죄 없는’ 박 시장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피해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이런 ‘막장 현실’이 서글프다. 피해자 측은 급기야 2차 가해 고소장을 냈다.

정치권의 진영 논리가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개적으로 “박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너무 맑은 분이기 때문에…” “박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여권 인사들의 말은 피해자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인식 수준은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다. 이 땅의 여성들은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는 소설 문장을 공유하며 분노하고 있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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