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김상중/노수경/사계절/1만3800원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달성한 국가다. ‘재팬 애즈 넘버 원 JAPAN as NO.1’이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경제 대국이라 자부한다. 허나 최근 일본에 대한 평가가 급속히 바뀌고 있다. 30년 장기 불황에도 끄떡없어하던 나라가 새롭게 등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앞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내각 관료들이 자국의 방역 시스템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다고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본을 향한 전 세계의 의심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일본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코로나19는 일본 경제에 낀 거품뿐 아니라, 정부와 체제를 비롯한 국가 시스템에 낀 거품까지 걷어냈다. 저자 재일한국인 강상중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은 거품이 꺼진 이유를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펼치며 시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저자는 그 거품이 근대화를 목표로 1868년 단행된 메이지유신이 남긴 그늘이라고 말한다. 메이지 유신이 일본에,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국가와 민족이 가진 본래의 정신에 서양의 기술을 결합하는 ‘화혼양재’와 산업을 양성하고 군대를 강화하는 ‘부국강병’은 20세기 비서구 국가의 거의 유일한 근대화 모델이 됐다.
그러나 시민혁명과 정치 체제의 민주화라는 굳건한 기반 없이 서구의 기술을 모방하는 데만 몰두한 메이지 유신의 결과, 산업화에 성공한 근대국가 ‘대일본제국’은 심각한 결함을 가진 괴물이 돼버렸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서구의 기술(洋才)’과 제대로 섞이지 못한 ‘일본의 정신(和魂)’은 제국주의로 변해 폭주했다. 그 끝이 태평양전쟁이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이다.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알리는 천황의 목소리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퍼져나간 이후 일본에는 ‘보통국가’로 돌아오는 길이 강제됐다.
그 뒤 이어진 20세기 후반의 현대는 일본이 다시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여전한 발전과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는 국가에 깔려 있던 국민들, 국가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살아 있는 인간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기질적 권한과 규칙, 관행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상황을 바로잡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전후 민주주의는 ‘평화국가’의 기치를 내걸고 개인의 인권과 함께 인간다운 ‘문화생활’을 보장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일본은 마치 국가를 위하여 국민이 존재하는 것처럼 도착된 상태였다. 국민 없는 국가주의만 팽창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나가사키현 군함도와 구마모토현 구마무라, 효고현 고베시, 후쿠시마현 원자력 발전소 등을 거쳐 최북단 홋카이도 노쓰케반도에 이르기까지 일본 근·현대사 격동의 현장을 누비며 메이지 유신이 초래한 부작용으로 떠오르는 국가에 짓눌리고 버림받은 국민의 흔적으로 가득 찬 현장을 고발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