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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제구실 못하는 정당 정책연구소 [심층기획 - 제구실 못하는 정당 정책硏]

입력 : 2020-07-06 06:00:00 수정 : 2020-07-06 09: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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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연, 2017년 이후 3년간 원장 5차례 교체 / 민주연은 임기보장·넉넉한 재정 시너지 / 민주연·여연 당서 연 평균 63억원 보조금 / “정책개발비 80∼90% 인건비 지출 관행” / “예산 줄고 선거 영향에 취지 퇴색” 지적도
정당의 부설 연구소로 출범한 정책연구소가 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더 높여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민주연구원 양정철 전 원장(왼쪽)과 여의도연구원 지상욱 신임 원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래통합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의 25주년 생일이던 지난 4월 15일, 통합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과거 ‘족집게 여론조사’와 정책 개발 역량으로 이름을 날렸던 여연은 당 대표가 바뀔 때마다 비전문가들이 요직을 꿰차면서 싱크탱크로서의 색깔이 옅어졌다. 이번 총선에서도 달라진 시대에 맞는 가치와 정책 공약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연은 총선 후 ‘해체’ 수준의 개혁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한 뒤 1년 전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통합당 내부에서 회자가 됐다. ‘대한민국 중심정당의 혁신적 포용노선’ 이름으로 발간된 보고서에서 ‘중심정당·주변정당’의 개념을 통해 정권교체론이 아니라 주류교체론이 총선에서 대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진 과정에서 민주당은 보고서 내용처럼 선거법 개정안과·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추진을 명분으로 중심정당의 개혁 면모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에 맞선 통합당에는 ‘반개혁’과 ‘발목 잡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정당의 부설 연구소로 출범한 정책연구소가 당 내 하부조직에서 정당의 혁신과 수권 전략을 만드는 중추 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다.

 

민주연구원과 여연은 최근 5년 동안 각각 민주당과 통합당으로부터 한 해 평균 63억원의 보조금을 받으며 정책 토론회·홍보·유권자 분석 등을 해왔다. 하지만 인사·재정권을 당이 틀어쥐고 있어서 정책연구소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직책에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나 당 지도부의 측근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꽂히다 보니 정책연구소 기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정책개발비 지출 비중 높지만… 실상은 인건비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민주연구원·여연의 ‘2019년도 정기회계보고서’에 따르면 민주연구원은 지난해 정당지원금(61억9667만원)을 포함해 67억1468만원의 수입을 거둬 57억1219만원을 지출했다. 여연은 44억9285만원의 정당지원금 포함, 75억8883만원의 수입을 거둬 58억7056만원의 지출을 기록했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경상 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연구소에 사용해야 한다는 정당법에 따라 보조금의 상당수를 정책연구소에 지원했다. 민주연구원이 받은 정당지원금은 지난해 민주당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정당 경상보조금(138억2225만원)의 44.8%, 여연이 받은 지원금은 통합당의 정당 경상보조금(135억9331만원)의 33.1%에 달했다.

 

두 정책연구소의 지출액 대부분은 정책개발비에 집중됐다. 민주연구원은 지난해 지출액 중 47.5%를 정책개발비(27억1214만원)로 사용했다. 인건비(23억4342만원·41.0%)와 사무소 설치·운영비(6억5677만원·11.5%)가 그 뒤를 이었다. 여연은 전체 지출액 중 91.3%에 달하는 53억5740만원이 정책개발비로 사용됐다. 인건비 지출액은 1억916만원으로 1.9%에 그쳤다.

 

두 기관 모두 외형상으로는 정책개발비 비중이 높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회계보고서 상세 내용에는 연구원 인건비와 업무추진비, 운영비도 정책개발비로 잡혀 있었다. 민주연구원은 연구직 당직자의 급여·상여금 등 인건비 24억9051만원을 정책개발비에서 지출했다. 이는 전체 정책개발비 지출액의 91.8%에 달하는 금액이다. 지난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에게 지급된 월 300만원가량의 업무추진비도 정책개발비에서 지급됐다. 여연은 4대 보험과 퇴직연금, 일부 직원 연봉 비용으로 37억3279만원을 정책개발비에서 지출했다. 객원연구원·정원 외 인력 비용으로 2억4411만원, 연구원 사무실 운영비와 직원 복지 비용 등으로 3억4228만원을 더하면 43억1919만원으로 전체 정책개발비 지출액의 80.6%에 이른다.

 

정책개발비에 급여와 운영비 등이 포함되는 것에 대해 선관위는 ‘정책의 추진·지지·반대 등 정치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가 정책개발비로 포함되기 때문에 정당연구소의 기본경비와 정책개발부서 직원의 인건비 모두 정책개발비로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당연구소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정책개발비로 비용을 분류해 지출을 많이 잡는 것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며 “연구원 지출의 상당수가 인건비와 정당 정책위원회 관련 토론회·세미나 비용으로 지출되기 때문에 연구원에서 독립적으로 사용할 예산은 제한적이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장을 지낸 전직 의원은 인건비 지출 비중이 높은 것에 대해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 정원이 100명으로 고정되는 바람에 정책연구소가 초과 인원의 고용을 유지하는 우회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기보장 민주연구원, 리더십 흔들리는 여연

 

정당 정책연구소의 독립성 확보는 연구소의 질적 향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민주연구원과 여연 모두 이사장을 맡고 있는 당 대표가 원장 임명권을 행사한다. 통합당 초선모임 ‘초선만리’는 여연 독립성 확보를 위해 이사장을 당 대표가 아닌 인사로 임명하고 원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방안을 담은 여연 개혁안을 지난달 당 지도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여연은 2017년 이후 3년 동안 원장이 5차례 바뀌었다. 2017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 4·15 총선에서 패배할 때마다 당 지도부와 여연 원장도 같이 동반 물갈이됐다. 잦은 리더십 교체는 여연의 연구역량 악화를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2014년 박사급 인력만 19명이던 여연은 2016년 12명, 2018∼2019년 6명으로 줄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대표가 2017년 7월에 임명한 김대식 전 원장 재임 시절 인력 구조조정과 당 지도부의 과도한 간섭 등의 이유로 석사급 인력이 2017년 31명에서 2018년 18명으로 대폭 줄었다. 지난달 새로 취임한 지상욱 여연원장은 잦은 리더십 교체에 따른 연구원 내 반발을 의식한 듯 취임 일성으로 화합을 내세우며 정책역량 강화를 약속했다.

 

반면 민주연구원은 같은 기간 박사급 인력이 11명(2014년)→20명(2016년)→22명(2018년)→29명(2019년)으로 해마다 늘었다. 민주연구원은 2016년 4·13 총선 승리 이후 임기가 보장된 원장의 리더십과 넉넉한 재정, 높아진 집권 가능성 등이 결합하면서 시너지가 났다는 평가다.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도부에서 연구원에 하달하는 과제가 많았지만 인력 확대와 연구원 위상 강화로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외부 싱크탱크와 연대한 중장기 과제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선관위 연구용역으로 한국 정책연구소의 개선방안에 관해 연구한 덕성여대 조진만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책연구소의 정치적 독립과 더불어 정책연구소를 바라보는 정당의 인식 변화도 주문했다. 조 교수는 “여연의 경우 초창기에는 당에서 비용을 아끼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외부 전문가들을 수시로 초청해 세미나를 열어 의견을 청취했다”며 “정치자금 운용이 투명해지면서 예산이 줄고 선거 패배로 챙겨야 할 사람은 많아지다 보니 정책연구소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필요한 자원을 빼 먹는 곳이라는 인식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주의 성숙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정당 정책연구소의 기능이 활발하고 위상도 높다. 당내 민주주의 회복과 맞물려 정책연구소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보장하는 제도와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獨, 국가서 직접 보조금 받는 법정기구

 

해외의 정당 정책연구소는 정치 문화와 제도에 따라 크게 독일식과 미국식으로 구분된다.

 

독일의 정당 정책연구소는 국가로부터 직접 보조금을 받는 법정기구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재정적으로 정당과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달리 정책연구소가 정당의 산하기관이나 출연기관은 아니다. 대신 연방의회 선거에서 네 번 이상 5% 이상 의석을 얻은 정당은 특정 정치재단을 지정해 국가 지원금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에 연방의회에 진출한 정당과 정책연구소는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은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연계돼 있다. 독일의 정책연구소는 매년 내무부·연방 감사원·지방정부 감사원·국세청 등으로 구성된 외부 감사기관으로부터 매년 회계감사를 받으며 관련 내용은 연례보고서와 관보를 통해 공개된다.

 

독일의 정책연구소는 특정 정당만을 위한 정책 개발보다는 공익 차원의 연구와 시민교육에 특화돼 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은 독일 전역에 18개 시민교육장·지역사무소를 운영하며 연간 2500여회 회의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년의 정치 참여와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연간 3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미래통합당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은 2010년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과 업무협약(MOU)을 맺은 뒤 정책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은 민간 정책연구소 중심으로 정책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정책연구소는 행정부나 의원들에게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인적 자산을 공유한다. 헤리티지재단은 공화당 성향, 미국진보센터는 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된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때는 헤리티지재단 인사들이,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 때는 미국진보센터 인사들이 다수 대선후보 캠프나 백악관에서 활동했다. 미국의 정책연구소는 기업과 개인의 기부를 통해 재정 수입을 충당한다. 자율성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기업과 고액 기부자의 영향력이 크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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