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의회에서 과거 남북전쟁 시절 남부연합 군대(이하 남군)을 이끌었던 장군들 이름을 딴 군사기지 명칭을 바꾸는 입법이 추진 중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해당 법률안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명확히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포트 브래그(Fort Bragg), 포트 리(Fort Lee) 등 많은 군사기지 이름을 새로 정하려는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해당 기지들은 미국이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이들 이름을 바꾸려는 취지의 국방수권법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기필코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미국은 상하 양원을 통과한 법률안이더라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다만 대통령의 거부 후에도 의회가 과반수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정족수 요건 아래 법안을 재의결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 의회는 하원은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반면 상원은 여당인 공화당이 다수라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까지 행사해가며 완강히 저지하는 경우 입법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브래그 요새’라는 뜻의 포트 브래그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장군이었던 브랙스턴 브래그의 이름을 따 지었다. 포트 리 역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을 기리고자 지은 기지명이다. 미국 전역에는 이들 외에도 남군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한 군사기지가 여럿 있다.

지난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 끝에 숨지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격화한 가운데 야당인 민주당을 중심으로 “남군 장군 이름을 따 지은 군사기지들을 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군은 흑인 노예제 유지를 주장하던 미국 남부 주(州)들의 권익을 위해 싸운 군대인 만큼 인종차별 시정과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라도 그들의 이름을 군사기지에서 빼야 한다는 논리다. 한때 민주당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이 그 선봉에 서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 등 보수주의자들은 이같은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1·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기존 군사기지 명칭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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