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의 직무상 ‘양심’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와 관련해 찬성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표를 던진 일로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헌법과 국회법을 통해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성’을 보장받는 국회의원이 당론과 어긋난 ‘자유투표’ 했다는 이유로 징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촉발됐다. ‘당론’과 ‘소신’이 충돌할 경우 국회의원의 역할은 어느 범주까지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당의 방침과 반대되더라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때로는 당내 지도부를 향해 직언을 서슴지 않는 ‘미스터 쓴소리’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역대 국회 ‘미스터 쓴소리’는 누구
‘입바른 정치’로 명성을 얻은 정치인은 11대 국회를 시작으로 2012년(18대 국회) 정계를 은퇴한 조순형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조 전 의원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 기탄없는 발언으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 당시 여당 의원임에도 청와대의 후보 지명 과정의 절차상 하자를 지적해 지명 철회를 이끌어 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당시 “전 후보자의 임명절차 문제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가 만들어낸 총체적 부실“이라고 비판했다.
고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17·18·19대 국회)도 당 지도부와 청와대를 향한 거침없는 ‘돌직구’로 주목받았다. 한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향해 “권력을 사유화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당 핵심에서 멀어지자 “권력에서 스스로 밀려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김용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18·19·20대 국회)도 한때 ‘새누리당의 엑스맨’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당내 비판세력을 자처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최순실 일파와 권력을 사유화해 국기를 파기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특검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의원의 앞글자를 하나씩 딴 ‘조금박해’ 모임이 조명을 받았다. 이들은 주요 현안에 대해 당내 주류와 입장이 갈리더라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등 ‘균형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은 같은 당 금 전 의원이 ‘소신투표’를 이유로 징계를 받자 “당이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냐”, “헌법과 국회법 규정과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제동을 걸었다.

◆“공당 소속원으로 의무 다해야” vs “헌법기관으로서의 기능 잃지 않아야”
‘미스터 쓴소리’의 날 선 비판은 당내 자정 작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의 소속원’이기도 한 국회의원의 이 같은 소신이 당론을 침해하는 투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당이 비슷한 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구성원들로 이뤄진 결사체이자 헌법과 법률을 통해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는 만큼 정당 스스로 당론을 정해 소속 의원에게 따르도록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다. 개인 ‘존재감’을 내보이려는 몇몇 의원들의 개별적 행보가 정당의 존재 이유를 위협한다는 우려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정당이 모든 사안을 당론으로 정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성을 가지고 추진하는 사안에 한정된다”며 “그 전에 당내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협의 과정이 있었다면 공당의 소속원으로서 따르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신과 당론이 충돌한 경우 결정하는 주체는 국회의원 자신”이라며 “정당의 기능과 역할 수행을 위해 당도 당으로서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선수와 나이, 직책 등을 떠나 각각 모두 국민이 선택한 ‘동등한’ 입장의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당의 지나친 ‘기속력’ 발휘로 국회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독자적 판단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8일 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현행 정당법에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표결을 징계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일명 ‘금태섭법(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갖춘 국회의원들이 사회에 구속력을 갖는 법을 만드는 회의체”라며 “국회의원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오로지 국민이여야 한다는 게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역할이 큰 우리나라 정당 특성상 소속 의원이 ‘감시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교양학부)는 “우리나라 정당의 특징은 기율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서 국회는 물론 정당 내에서도 국민의 대표로 기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가 국회의원 개인을 통제하는 것과 당 건전성은 반비례한다”며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의 의견이 묶이면서 당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이 마비된 상태”라며 “당파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당이 권위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편향되게 치우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중대한 현안은 반대 의견 많은 게 정상 민주당, 금태섭 징계 처분은 이중처벌”

‘국회의원의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그에 대한 부당한 결과가 없을 것.’, ‘국회의원이 양심에 따라 말과 행동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을 것.’
25일 조순형(사진) 전 의원이 제시한 국회가 진정한 ‘민의의 전당’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두가지 전제다. 11∼18대 국회(13대 제외)에서 활동했던 조 전 의원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원조 쓴소리’로 유명하다. ‘7선’을 지낸 동안 당내 비판세력을 자처하고, 때로는 청와대와의 정면충돌도 불사했던 그에게 청렴, 소신, 원칙 등의 단어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조 전 의원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치인이 필수로 갖춰야 할 덕목은 ‘용기’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정당 소속원이라는 역할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민의 대표라는 점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의 징계 처분과 관련해 “명백한 이중처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심에 따른 국회의원이 직무를 명시한 헌법과 자유투표의 원칙을 규정한 국회법과 정면 배치되는 조치라는 점에서다.
조 전 의원은 “금 전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투표 이전 논의에서도 반대 의사를 일관되게 표시했다고 알고 있다. (당론에 따르지 않은 점은) 경선 낙오로 사실상 공천이 배제되면서 정치적 책임은 충분히 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도 당에서 별개로 또 다른 처분이 내려진 것은 이중처벌로 헌법과 국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원천적으로 이 징계는 무효”라고 강조했다.
조 전 의원은 그러면서 “중대한 현안일수록 반대 목소리가 많이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이고, (당은) 이런 의견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당내 민주주의는 퇴보 중”이라고 꼬집었다. 조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 ‘소신’에 따라 행동했을 때 공천 등에서 따르는 불이익이 상당하다”며 “결국 국회의원 본인의 도덕적 결단에 의해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21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들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기존 정치풍토에 익숙한 중진의원들보다 참신한 초선들의 목소리가 국회 개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초선 비율은 각각 46.5%, 56.3%다.
조 전 의원은 이들에게 “우리 국민들이 ‘새 정치’를 기대하고 투표했는데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선 첫날부터 4년 뒤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초당적 형태의 ‘자유투표 실천 선언’을 제언했다.
그는 “(거대 양당의) 초선 의원들이 상당히 늘어났다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이 새 정치를 그만큼 원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최근 국회에서 여야 불문하고 ‘개혁’이라는 말이 붙지 않은 모임이 없는데, 국민 이익을 앞서 생각하고, 말과 행동으로써 실천하겠다는 (초선들의) 선언만큼 개혁의 기폭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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