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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진심을 느낄 수 있는 필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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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03 22:12:02 수정 : 2020-06-03 2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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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글로 쓰인 서예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던 적이 있다. 한자 서예는 일본에서도 많이 보고 학교에서도 배웠지만 한글 서예는 그날 처음으로 본 것이다. 나중에 그 서예가 궁중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필사체로 발달한 궁체임을 알게 되었다. 한글은 한자에 비해 아주 심플하지만 글자의 곡선이 곧고 부드러우면서 단정하다. 그런데 이 글씨체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서예의 세로줄이 하나만 있는 것은 당시 인간의 생각을 바로잡고 어지럽히지 않기 위한 소중한 교육신념이라는 한글서예의 배경이 흥미로웠다.

현대 사회에서 일을 할 때 필기체를 사용하여 직접 글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글은 컴퓨터로 작성하는 시대이다. 글씨체를 선택하면 컴퓨터로 필기체를 쓸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손글씨의 맛은 나지 않는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 교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의 경우는 어떨까? 요즘 학교에서는 영어를 배울 때 필기체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에 따라 손글씨를 하기에 적합한 필기체보다 컴퓨터에 적합한 활자체가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옛날 우리 세대에서는 영어 수업시간에 분명히 활자체와 필기체를 모두 배워서 글자를 연결하여 쓰는 법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영어권 국가에서도 필기체를 가르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시간에 타자 연습을 하는 편이 훨씬 효율이 좋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 말이든 흐름이 있는 필기체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래서 필기체는 상표나 디자인 등, 예술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효율성이 없다고 해서 학교에서도 필기체를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 학생들이 선생님이 되었을 때, 당연히 필기체를 가르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적어도 학교에서만이라도 필기체를 가르쳐서 그 아름다운 글자를 남길 수 있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현대는 기계에 의한 공산품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져 수제 공산품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시대이다. 세상의 흐름이 불필요한 것이나 효율이 나쁜 것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점차 소멸해 가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중에서도 사람의 손만이 전달할 수 있는 따뜻한 온기가 재차 빛을 발하게 되는 수제 작업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으로 만든 스웨터는 기계로 제작된 옷보다 따뜻하고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안마기로 안마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안마사에 의해 직접 손으로 받는 쪽이 훨씬 시원하다. 모두 정성을 다한 마음이 손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 세대에서는 컴퓨터가 워낙 빠르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연하장, 감사편지와 같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글은 무미건조한 타자보다 자필로 쓰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쓴 글에 더욱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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