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금융범죄 수익을 환수하지 못한 데에는 허술한 법·제도의 탓이 크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법원이 부당이득을 보수적으로 추정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환산방식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검찰이나 금융당국이 부당이득액을 산정하는 방식은 위반행위에 따른 수입에서 거래를 위해 쓰인 비용을 빼는 ‘차액산정방식’이다. 증권 등의 거래로 벌어들인 이익뿐 아니라 실현되지 않은 이익도 포함되지만 거래에 들어간 수수료 등의 비용은 빼는 방식이다. 하지만 검사가 제시한 부당이득에 대해 법원이 그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왔다. 이에 현재 계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각 위반 행위별로 구체적인 산정방식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부당이득액의 규모를 누가 증명하도록 할지도 중요한 논쟁거리다. 현재는 검사가 그 입증책임을 진다. 범죄 혐의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피고인이 외부적 요인에 따른 가격변동을 주장한다면 이를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고인이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위반행위와 부당이득 사이의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운 경우 입증책임을 전환한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환경범죄의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환경범죄와 같이 인과관계 규명이 어렵고 사회적 해악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위반 행위자가 입증하도록 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부당이득액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사건연구방식’이 활발히 사용된다. 이는 문제가 되는 사건이 발생한 기간의 주가 변화와 해당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를 비교해 정상적인 가격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검사가 아닌 피고 측이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재판부가 부당이득액을 판단할 때 과대하게 산정하는 경향이 있어 피고인 측이 양형을 감경받으려는 수단으로 이 방식을 적극 활용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이뤄져도 부당이득액이 법원에서 특정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이에 부정행위가 인정된다면 최소한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본시장법은 위반했지만 부당이득액은 ‘0원’이 선고되는 경우는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엄격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부당이득 산정이 어려운 경우 일정액 이상을 벌금으로 부과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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