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들도 저에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로상담을 많이 해요. 그 외 전문직도 ‘법’을 도구로 해서 날개를 달 수 있는데 그걸 왜 막아요? 로스쿨의 자정능력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죠.”
21일 제주에서 상경한 ‘로줌마’ 박은선씨는 이같이 토로했다. 이날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법원협)·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법실련) 등은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신규 변호사 배출 통제 규탄대회’를 열어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및 합격률 상승을 촉구했다. 이들은 법무부 등이 변호사 수 통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합격률을 조정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2년 실시된 1회 변시 합격률은 87.25%였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8회 합격률은 50.78%에 그쳤다. 제9회 변시 합격자 발표는 오는 24일로 예정됐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여력이 적다”는 이유로 자칫 좌초될 뻔한 시위를 주도한 건 박씨였다. 제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올해 재시를 치른 그는 향후 ‘삼시’를 치를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시위 현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상기 법무부 장관님, 데이트 신청합니다”
2018년 박씨가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는 당시의 참담한 심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지방의 한 로스쿨에서 공부 중인 자신을 ‘로줌마’로 소개했다. 당시 박 장관이 반토막 난 변시 합격률에 대해 “그건 거짓말이다. 팩트체크를 하라”고 답한 데 대해 정면 반박했다. 박씨는 10여년 간 고등학교에서 사회과 교사로 근무했다.
암기식, 성적 만능주의에 매몰된 학생들이 소위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안타까움이 컸다. 공교육이 붕괴하는 현장이었다. 이어 박씨는 로스쿨에 입학한 뒤 학생 입장에서 같은 고초를 치러야 했다. 법조인이 길러야 할 철학과 신념, 양식은 교육의 전당에 없었다. 오로지 수험서에 밑줄을 긋는 학생들로 교실은 삭막해져갔다. 네가 아니면 내가 탈락하는 시험, 탈락률 50%의 기형적 시험이 초래한 풍경이었다.
법무부는 합격률 결정 기준에 대해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달 로스쿨생들은 변호사시험 업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법조인력과에 합격률 제고 방안에 대한 논의 결과를 요구하는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해당 분과 소위원회는 지난해 9월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연구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조율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그러나 합격 발표 이후에야 연구결과 공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전 공개할 경우 합격률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변시 낭인’들은 정치권에서도 외면 받는다.
총선 전 법실련 등은 로스쿨 출신의 한 수도권 출마자와 면담을 했다. 당시 참가자에 따르면, 그는 로스쿨생들의 요구사안인 변시 자격시험화에 대해 “페이스북 등에 긍정적인 의견을 내주겠다”며 학생 단체에 먼저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후 “선거 중이라 어렵다”며 말을 바꿨다. 그는 당선됐다. 21일 시위에 연사 혹은 음성 메시지를 요청하는 ‘후배’들의 요청에는 “지역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다. 이에 로스쿨 2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 많아져 우리 입장을 대변해 줄것이라 기대했지만, 실망이 컸던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법무부의 적정 변호사 수 관련, 내부 용역 연구자료를 공개한 오수근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 도입 취지대로 선진국 수준의 변호사 규모를 갖춰나가자는 본질적인 논의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해당 자료는 주요 국가의 법조인과 변호사 수를 비교했다. 2018년 기준 인구 1만명당 법조인 수는 미국이 40.85명으로 가장 많았다. 영국(32.09명), 독일(23.11명), 프랑스(11.58명)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5.01명에 불과했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3만명 시대를 맞아 법조인들이 스스로 고객 맞춤 서비스 등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변시 합격률을 낮춰 시장을 통제하는 식으로는 건강한 업계 환경이 만들어 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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