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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와 우물’, ‘1000년 왕국’ 신라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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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01 10:04:00 수정 : 2020-04-01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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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년, 경주에 동궁(東宮)이 건설됐다. 

 

“동궁을 짓고, 궁궐 안팎의 여러 문 이름을 처음으로 정했다.”

 

삼국사기의 관련 기록이다. 당시 신라의 국왕은 삼국 통일을 완성하고, 나라의 틀을 다시 세운 문무왕. ‘차기 지존’ 태자의 거처인 동궁을 건설함으로써 신라의 또 다른 도약과 창창한 미래를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기운이 속절없이 꺾이고, 935년 급기야 한반도의 주인이 고려로 바뀌면서 동궁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18호) 북동편 ‘가’지구의 발굴조사 성과를 담아 발간했다고 1일 밝힌 ‘경주 동궁과 월지 Ⅲ 발굴조사 보고서’에서는 ‘1000년 왕국’ 신라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흔적이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보고서는 6500㎡의 해당 지역에서 발굴된 건물지 40동과 담장, 우물, 배수로 등 생활시설과 기와와 벽돌, 토기와 도기, 금속 등 유물 591점에 대한 조사 성과를 담았다. 동궁, 나아가 신라의 번성과 쇠퇴를 보여주는 유적은 뜻밖에도 화장실과 우물 유적이다.  

 

◆고급스런 변기에 반영된 신라의 번성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수세식 화장실 흔적

태자의 거처인 동궁에는 ‘어룡성’, ‘세택’ 등 왕실 사무를 관장하는 관청이 있었다. 신라의 지배층이 살고, 일하는 곳이었던 만큼 그들의 뒷간도 사뭇 화려했다. 

 

동궁의 화장실은 배수시설을 갖춘 수세식 구조였다. 화장실터에서는 24㎡(약 7평) 넓이의 전체 건물터와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이 온전히 확인됐다. 화강암으로 만든 변기는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는 발판이 있는 2개의 돌판을 맞물리게 한 것과 한 개의 돌판에 타원형 구멍을 뚫은 것이 함께 출토됐다. 배출된 오물이 잘 흘러나가도록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 땅 밑에 고랑을 파 물을 빼는 시설)도 있었다. 물을 흘려 오물을 암거를 통해 배출되는 구조인 것이다. 물을 유입하는 설비는 확인되지 않아 항아리 등으로 물을 떠서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구실을 하는 전돌을 깔았다.

 

고대의 화장실은 경주 불국사,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발판과 구멍 달린 변기, 배출배수시설 등이 함께 붙은 화장실 유적의 전모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처음이며 어느 사례보다 고급스럽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고 번성했던 신라의 면모가 화장실 모습에까지 반영된 것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 박성진 연구관은 “동궁의 화장실 유적을 통일신라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통일 이후 발전된 문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위생과 관련된 수준높은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진 동궁, 덩굴로 뒤덮인 우물

동궁·월지에서 발견된 우물 흔적

우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동궁의 흥망을 짐작하게 한다. 동궁과 월지 ‘가’지구에서 확인된 우물은 모두 3개. 이 중 통일신라∼고려초에 형성된 7.2m 깊이의 ‘3호 우물’에서 나온 식물 유체의 분포 양상이 눈길을 끈다. 

동궁·월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씨앗

형성 초기의 생활상이 반영된 우물 깊은 곳에서는 재배식물들이 적잖이 출토됐다. 6.8m 지점에서 발견된 토기호에서는 메밀, 참외류, 오이, 가지, 우엉, 벼 등이 들어 있었다. 식용을 위해 손을 댄 타격흔도 보였다. 6.5∼7.2m 지점에 나온 식물 유체 역시 잣나무, 밤나무, 삼, 참외류, 가지, 우엉 등 재배식물이거나 유용한 야생식물로, 모두 파편이어서 식용 후의 잔여물로 추정할 수 있다. 땔감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소나무류의 목탄도 나왔다.  

 

우물 하층부 식물에 뚜렷한 사람의 흔적은 4m 정도의 지점에서부터 확연히 약해진다.  4.0∼4.8m에서는 재배식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3.5∼4m 지점에서는 며느리배꼽, 개머루, 환삼덩굴 등 다양한 덩굴식물과 가공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 조각이 나왔다. 

 

이는 신라의 멸망과 함께 사람들이 동궁을 떠나면서 생긴 변화다. 상층부에 많이 나온 덩굴류 식물유체가 대표적이다. 연구소는 “통일신라시대 말기~고려시대 초기 퇴적으로 추정되는 하부층에서 동궁에서 이용되었을 재배식물, 유용야생식물의 다양한 자료가 확보됐다”며 “고려시대 이후 형성된 상층부에서는 ‘버려진 우물’을 나타내는 덩굴류 식물유체가 특징적으로 많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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