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아시아계를 혐오·차별하는 행태에 뒤늦게 경고음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우리의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그들은 놀라운 사람들이고 바이러스의 확산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언급을 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우리나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끔찍한 언사’(nasty language)가 조금 있는 것 같다”며 “나는 그게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코로나19 확산과 더불어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 12일 뉴욕에서는 홍콩 출신 40대 미국인이 10살 아들과 함께 길을 걷다 다른 남성으로부터 “네 XX 마스크는 어디 있냐”며 욕설을 듣는 등 아시아계를 겨냥한 언어적·신체적 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아시아퍼시픽 정책기획위원회’(A3PCON)와 ‘긍정행동을 위한 중국인’(CAA) 두 단체가 지난 19일 개설한 고발 사이트에는 이미 150여건의 증오 사건이 접수됐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사이트 개설을 도운 러셀 정 샌프란시스코 시립대 교수는 지난달 9일부터 이달 7일 사이 아시아계 차별을 다룬 뉴스가 약 50% 증가했다며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증오 범죄에 대한 우려는 총기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총포상 데이비드 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내 고객은 주로 중국 본토 출신인데, 신문에서 외국인 혐오 범죄 소식을 접하고 다음 타깃이 자신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며 “고객 중 80∼90%가 생애 첫 총기 구매자이며, 베트남·필리핀·일본인 등의 구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등 미국 내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듣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아시아계 보호 필요성을 강조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아시아계)은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그들’과 ‘우리’를 구분한 것은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라고 영국 BBC방송은 꼬집었다.
BBC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미국 내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인종 집단”이라며 트럼프의 이날 발언을 ‘재선 노림수’와 연결해 분석하기도 했다.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은 대통령의 언급이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외국인 혐오증을 퍼트려 많은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더라면 불필요했을 말”이라고 비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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