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 대화재, 호주 대산불, 필리핀 화산 폭발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지난해와 올해 지구촌은 유례없는 대재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재난의 여파로 지구 환경과 세계 경제 또한 출구 없는 위기상황이다. 중국과 이어 전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코로나 확진자(25일 오전 9시 기준 893명)가 발생한 국내 상황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특히 산업계의 경영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국내 1위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의 신용등급(Baa3)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Baa3는 이 회사가 제시하는 10개 투자적격 등급 중 가장 낮은데, 이번에 그 전망마저 부정적으로 바꾼 데 따라 앞으로는 아래 단계인 투기 등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롯데쇼핑은 지난 13일 전국에 있는 백화점과 마트, 슈퍼, 롭스(드러그 스토어) 등 700여 매장 중 30% 수준인 200여곳을 정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이마트는 지난해 12월 삐에로 쇼핑(할인 잡화점)과 일렉트로마트, 부츠(드러그 스토어) 등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전문점의 59개 점포를 폐점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18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다음달까지 기술직과 사무직을 포함한 만 4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항공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먼저 아시아나항공은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대표이사를 비롯한 모든 임원이 사임 의사를 밝히는 한편 급여 일부를 반납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조종사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돌아가며 무급휴직을 진행하고 있다.
위기경영체제에 돌입한 제주항공 역시 희망휴직 모집에 들어갔다. 이스타항공은 경영진의 임금을 삭감하고 승무원을 제외한 전 직원이 근무일과 근무시간을 단축하기로 했고, 에어서울과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진에어 등 다른 저비용 항공사도 무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내달부터 모든 직원이 무급 희망휴직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에어부산은 대표이사 이하 모든 임원이 지난 24일 일괄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난주에는 임원들은 급여 20∼30%, 부서장급도 자발적으로 10%를 각각 반납하기로 했다. 무급휴직 15일 또는 30일, 주 4일 근무 중 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타항공의 조종사 노조조합은 사측의 무급휴직 협조 요청에 3∼6월 임금의 25%를 자진 삭감하기로 했다. 상무보 이상의 임원은 30%를, 임원을 제외한 본부장 직책자는 직책 수당을 각각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또 운항·객실 승무원을 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근무일·근무시간 단축 신청을 받기로 했다.
글로벌 경제상황도 심각하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식시장의 주요 지수는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일제히 하락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78% 내린 2만8992.41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은 1.05% 하락한 3337.75, 나스닥 지수는 1.79% 떨어진 9576.59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아이폰’의 90%를 폭스콘의 중국 정저우·선전 공장에서 생산하는 애플의 주가도 1.5%나 떨어졌다.
이처럼 세계적인 재난으로 국내외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위기가 확대되는 가운데 반대로 성장을 거듭하는 기업들도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프랑스 명품 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케링(Kering)그룹이 대표적이다. LVMH 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5% 늘어난 536억7000만유로(한화 약 70조2293억원), 영업이익은 14% 늘어난 112억7300만유로(한화 약 14조7511억원)에 달했다. 케링그룹 역시 전년 대비 13.3% 증가한 158억8350만유로(한화 약 20조7841억원)의 매출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보통 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 명품 소비는 크게 위축되는 탓에 이 같은 실적은 업종 특성이 아닌, 이들 기업의 경영전략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케링그룹 소속인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2018년 ‘생명을 살리자, 삶을 바꾸자’(Saving Lives, Changing Lives)라는 슬로건 아래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대대적인 협업을 시작했고, 주요 제품의 전면에 커다란 유엔 로고를 새겨넣었다. 이 로고를 삽입한 것은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 기여하고 패션 기업의 친환경·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겠다는 의미였다.
LVMH는 지난해 펴낸 환경 보고서에서 “주요 약속 중 하나는 17개의 유엔 SDGs 기여”라고 분명히 밝혔고,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등 유엔 기구와의 협업을 알리고자 홈페이지의 메인 광고로 크게 내걸었다.

국내에서는 CJ대한통운과 일동제약, 한솥 도시락이 유엔 SDGs 협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에서 SDG와 관련한 조사 및 트레이닝 기구(Help Desk Research and Training Institute) 및 공식 네트워크로 지정된 UN지원SDGs협회와 진행한 친환경 캠페인이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택배 송장이나 생산제품, 식품용기 등에 협회의 유엔 지지 및 친환경 인증 로고를 넣음으로써 위기상황에서도 돋보이는 글로벌 공익 마케팅을 펼쳤다. 실제로 협회의 SDGs 문구와 로고는 12억5000만개의 택배 송장에 새겨졌으며, 미세먼지 흡입을 막는 25만개 마스크는 완전 판매를 기록했다. 900곳의 한솥 도시락 매장에서 직접 선보인 협회의 SDGs 문구와 로고 삽입 제품은 고객의 높은 호응과 지지로 이어졌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발표된 SDGBI(UN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에 물류업계에서 유일하게 이 지수에 편입됐고, 국내 200여 기업 전체 순위에서도 1위로 선정됐다. SDGBI는 유엔이 지속가능경영 측정도구(Sustainable Business Tools and Methodologies)로 공식 지정한 대표적인 글로벌 지속가능 경영 지수다. 한솥 도시락 역시 식품 및 음료 제조업 부문의 최고 순위인 전체 10위에 올랐다. 동종업계로 보다 덩치가 큰 스타벅스코리아(33위)나 오뚜기(44위), SPC 그룹(67위), 동원 F&B(62위), 청정원(70위), 매일유업(71위), 남양유업(34위), 삼양사(54위)를 모두 뛰어넘은 결과를 보였다. 일동제약 역시 이 지수의 1위 그룹에 오르며, 제약업계 중 지수에 편입된 녹십자나 유한양행, 셀트리온, 한미약품 등 다른 업체를 크게 앞섰다.
최근 유엔 SDGs는 소비자의 친환경 제품 선택의 새 기준으로 부상한 만큼 유통·금융업계도 이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SDGBI의 순위에 오른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142위), BNK금융지주(31위) 등도 이를 눈여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매출 22조3525억원, 영업이익 8969억원으로 전년 대비 매출은 19.7%, 영업이익은 7.7% 각각 증가했다. 지난해 7월 뉴욕 유엔 본부에서 협회가 발표한 ‘전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브랜드’에 ‘비비고’가 선정되었고, 이어 발표된 SDGBI에서는 사상 최초로 글로벌 최우수 그룹에 선정된 덕도 봤다는 후문이다. 동종 업체인 SPC와 롯데제과, 오뚜기, 동원 F&B, 동원산업, 삼양사, 농심 등의 행보와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김정훈 UN지원SDGs협회 사무대표 unsdgs@gmail.com
*UN지원SDGs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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