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음성적인 정치자금 조달창구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이 2004년 입법화되면서 법인·단체의 기부행위가 전면금지되자 기존보다 줄어든 후원금을 출판기념회 수익으로 벌충하려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잘 알게 하자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한 이유 중 하나는 책 판매 대금을 규율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아 출판기념회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출판기념회를 잘 치르면 1억원가량은 남길 수 있다는 말이 국회 안팎에 회자될 정도다.
지난달 중순 한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치른 관계자는 14일 “의원들 간에는 책값으로 10만원을 챙겨주는 게 관행이고 기업이나 지역구 관계자들은 더 넣기도 한다”며 “행사장 앞에서 책과 봉투를 교환하는데 봉투에 든 금액을 현장에서 확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판기념회 개최가 금지된 지난달 16일 전까지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회 개최가 봇물을 이뤘다. 의원과 예비후보자들은 참석자 규모가 수백명에서 수만명에 달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일부 행사장에 나가 단속을 하지만 무료 또는 싼값으로 책과 다과 등이 제공되는지 여부만 살핀다. 이를 위반하면 기부행위로 보고 공직선거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책값으로 얼마가 오가는지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출판기념회에서의 책 판매는 선관위의 관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원금과 달리 이를 규제하는 관련법이 없어 수입과 사용내역을 선관위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고액이 오가더라도 확인할 길이 없다.
2014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으로 39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것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회 개선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선출직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탈세이고 법의 사각지대”라며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를 받는 대상이 되는 고위 공직자들은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최민희 의원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이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 때도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 제정안에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는 도서판매를 정가로 해야 하며 수입과 지출은 중앙선관위에 신고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선관위에서도 “도서를 정가로 판매하는 행위 이외의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어떠한 명목으로도 일체의 금품을 받을 수 없게 해야 한다”며 법 개정의견을 냈다. 하지만 정치권은 자정의 목소리만 높이다가 슬그머니 개선안들을 거둬들였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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