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행어사 출두요!”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의 출두 장면은 장쾌하다. 변사또는 혼비백산하고 탐관오리들은 달아나느라 정신이 없다. 이몽룡은 출두 직전에 칠언절구의 한시로 이들의 악행을 통렬히 꾸짖는다. “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민루락 가성고처원성고(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 원성도 높네’라는 뜻이다.
이몽룡이 읊은 시는 조선 중기의 청백리 성이성이 지은 시라고 한다. 그는 주인공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성이성은 남원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중에 과거에 급제해 충청과 호남 지방에서 여러 차례 암행어사를 지냈다. 그가 충청도 석성현에 닿았을 때에는 그야말로 거지꼴이었다. 마침 수령의 생일날이라 관아에선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백성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관아로 들어간 성이성은 술과 안주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고 즉석에서 ‘가성고처원성고’의 시를 지었고, 석성현감은 춘향전 변사또의 모티브가 되었다.
춘향전의 한시가 오랜만에 여의도 정가에서 부활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어제 “저들이 변사또처럼 잔치를 벌이며 웃음소리를 높이고 있다”면서 “춘향전에 나오는 ‘가성고처원성고’를 기억하기 바란다”고 소리쳤다. 난장판 정치와 경제난으로 국민의 원성이 치솟는 와중에 요란한 술자리를 가진 집권여당의 교만을 꼬집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50여명은 선거법, 공수처법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까지 처리되자 전날 한식당에서 떠들썩한 자축연을 열었다.
공자는 일찍이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했다. 권력이 법제를 고쳐 현대판 암행어사인 검찰의 출두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이목까지 가릴 순 없다. 국민을 얕보는 권력은 결국 뒤집힌 배의 신세가 될 것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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