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은 지난 19일 계열사 대표 22명을 바꾸는 대규모 임원 인사를 단행해 호텔·서비스 비즈니스유닛(BU)장인 송용덕 부회장을 지주회사인 롯데지주의 공동 대표이사로 내정하고, 후임으로 롯데지주에서 그룹 재무 업무를 총괄해 온 이봉철 재무혁신실장을 선임했다.
이로써 송 부회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공동대표(부회장)와 함께 신동빈 회장을 보좌해 인사와 노무, 경영개선 업무를 담당하고, 지주사 체제 전환을 이끌었던 이 사장과 함께 호텔롯데 상장 작업 등을 지휘하게 된다.
송 부회장이 시장 체제에서 롯데그룹이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호텔롯데의 상장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이에 따른 막대한 국부 유출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호텔롯데 상장 후 주주 친화정책을 펼치면 최대주주이자 사실상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일본인 임직원이 최대 수혜자가 되는 지배구조 탓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 투자·운용사인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SI), 12개의 L투자회사(L1∼L12) 등 일본 주주의 지분율이 99,28%에 달한다. 이들 주주의 지분은 자유로운 매매는 제한되지만 의결권이 있고, 배당 받을 권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가 상장하면 이들 일본 기업은 엄청난 차익을 장부상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임직원 주주에 대한 배당 여력이 커지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롯데가 상장해도 일본 주주들이 주식을 일정량을 보유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대적인 규모로 증자하지 않는다면 지배구조가 크게 달라질 게 없다”며 “자칫 일본 롯데 회사 쪽으로 한국의 막대한 자금이 유출되고, 지배권도 가져오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호텔롯데가 상장하려면 공모 증자를 해야 한다. 그 결과 주가가 크게 올라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주주들이 매각에 나선다면 일본 롯데 경영진과 종업원, 관계사 등에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다만 주가가 크게 오르더라도 신 회장의 우호지분 확보 등 여러 정황으로 보면 롯데홀딩스를 비롯한 일본 주주들은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결권에 미치는 영향력과 향후 배당 받을 권리 등을 감안하면 기존 대비 절반 정도의 주식을 계속 보유할 것이라는 게 그룹 안팎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상장을 통해 지분을 사들인 분산된 개별 투자자들보다 약 절반의 주식을 보유한 일본 롯데 관계사의 영향력이 여전히 클 수밖에 없다. 상장회사 주주총회의 실제 의결권 행사 비율이 80~90%라고 가정해보면 주식을 절반 가량만 보유하고 있어도 이사 선임 등 거의 모든 중요한 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엔 변함없다.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일본 롯데 관계사들은 호텔롯데의 상장으로 국교정상화 후 지금까지 한국에 투자해온 거액의 투자금 중 일부를 회수하는 한편 지배권은 거의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상장에 따른 공모 증자나 주식 매수를 통해 호텔롯데의 소액 주주가 될 국내외 투자자와 일본 관계사 지배주주의 이익이 상충될 시 구 주주의 이해에 따라 회사 정책이 결정되고, 그 결과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되는 구조상의 문제도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최대 포털 사이트인 야후 재팬(Yahoo Japan)이 자회사이자 현지 사무용품 대형 업체인 아스쿨(Askul)의 사장을 강제 퇴임시키려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일본에는 이처럼 약자 입장에 놓인 자회사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지배 구조가 용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호텔롯데 상장 후 일본 롯데가 이 같은 관행을 바탕으로 지배력을 한층 더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봉식 기자 yangb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