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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색상 종류 확대’가 규제 개혁?… 전문가 “속빈 강정” [혁신성장 발목 잡는 규제]

입력 : 2019-12-17 18:57:11 수정 : 2019-12-17 22: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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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정부의 혁신 실적, 현실과 괴리 / 2019년 규제개혁회의 18회나 개최 불구 / 좀처럼 가시적인 성과 안 나와 ‘답답’ / 규제혁신과제 완료율 높다 말하지만 / ‘점자출판물·고령친화제품 유연화’ 등 / 혁신성장과 연관성 없는 과제들 많아 / 대기업·中企 체감도 100 이하로 ‘불만족’ / 정부, 규제는 강화하면서 완화는 ‘미미’

#1. 2018년 6월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당일 연기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규제혁신 보고 일부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건의해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이 총리에게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보고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날 연기된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는 지금까지도 열리지 않았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준비 미비로 연기된 것도 이례적인데 국무총리 제안으로 대통령이 연기한 회의 자체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건 코미디에 가깝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17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같은 이름의)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고 확인하고 “규제혁신점검회의가 정식 회의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2. 지난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5차 혁신성장전략회의’가 열렸다. 회의 안건으로 ‘혁신성장 추진성과 점검 및 보완계획’이 올려졌다. 기재부는 전날 오후 4시까지 ‘혁신성장 추진성과 및 향후 계획’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기로 했다가 “수정사항이 많아 좀 지연된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당일 오전 1시를 넘겨서야 보도자료 ‘초안’이 배포됐다. A4 31쪽 분량의 자료에는 ‘주요 정책 및 성과’가 16쪽으로 절반이나 됐다. ‘한계와 과제’ 부분은 1쪽뿐이었다. ‘자화자찬성’, ‘짜깁기’ 자료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기재부 내에서조차 “차라리 발표를 안 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올해 규제개혁회의만 16차례… 현장선 “글쎄”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혁신성장’을 이루려면 규제개혁이 필수적이지만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임기 반환점을 지난 문재인정부의 경제성적은 혁신성장 정책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개혁회의가 준비 미비로 연기돼 1년 넘게 열리지 못한 건 정부 노력에도 좀처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결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기회 되는 대로 규제개혁을 부르짖고 정부도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는 본회의만 지난해 20차례, 올 들어 지금까지 16차례나 열렸다. 이 총리는 지난 10일 “규제 샌드박스 승인 목표가 100건이었는데 이미 180건을 승인했다”면서 “연말까지 200건을 돌파할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와 민관합동 규제개선추진단, 규제개혁신문고도 운영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규제개혁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 9월 한국경제연구원 의뢰로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 규제개혁체감도’를 조사한 결과 규제개혁체감도는 94.1로 전년도(97.2)에 비해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하는 기업은 11.7%에 그쳐 불만족(22.0%)하는 기업이 많았다.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 대표가 불법영업으로 기소되고 금지법안까지 만들어지는 상황을 들어 규제개혁이 거꾸로 간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규제개선 과제 1200건 완료는 숫자일 뿐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을 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규제혁신 과제 1889건을 발굴해 1210건(64.1%)을 완료한 것으로 돼 있다. 규제 10건 중 6건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과제 520건(27.5%)은 개선 중이고, 16건(0.8%)은 부분완료했고, 143건(7.6%)은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심의 중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신산업 현장 제기 규제 혁파’ 과제만 하더라도 207건 중 158건이 완료된 것으로 소개돼 있다.

 

정부 소개대로 1200개 넘는 규제가 개선됐는데도 현장에서 실감하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과제를 일일이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무인등대 등탑 색상 종류 확대’, ‘점자출판물 제작·보급 지원대상 유연화’, ‘서해5도민 해상운송비 지원대상 확대’, ‘농촌진흥을 위한 교육훈련사업 범위 유연화’, ‘고령친화제품 종류 유연화’…. ‘규제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아스러운 과제들이 눈에 띈다. 혁신성장과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고 이런 것까지 규제하고 있었던가라는 비난을 살 만한 과제가 적지 않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이번 정부는 물론이고 이전 정부에서도 규제개혁 건수는 많지만 실제 기업활동이나 혁신성장에 자극을 주는 규제개혁 건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일부 과제는 완료율도 극히 저조하다. ‘선제적 규제혁파 로드맵’ 과제 30건 중 3건, ‘중기·소상공인 규제 혁신방안’ 과제 140건 중 22건, ‘민생불편 규제 혁신방안’ 과제 50건 중 16건이 완료되는 데 그쳤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규제마다 성격이 달라 단순히 건수 등을 근거로 완료율이 높다 낮다고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다”면서 “규제개혁 완료일을 최대한 앞당겨 정하면서 완료 예정일을 넘긴 경우도 적지 않고, 국회 심의 중인 건 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유정주 기업혁신팀장은 통화에서 “정부가 하는 규제개혁 완화는 한 개 또는 몇 개 기업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다수”라면서 “반면 정부의 규제강화 정책은 주 52시간 근무, 최저임금 인상 등처럼 소상공인을 포함해 전 사업장에 해당하다 보니 규제완화 체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규제개선 효과 2년뿐… 지속적 이뤄져야”

 

“과거에는 5년에서 10년이던 상품이나 서비스 주기가 최근 2년 정도로 당겨졌다. 신상품,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개선되면 5년에서 10년간 나타나던 규제 개선 효과가 2년이면 사라진다는 의미다. ‘규제 지체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정욱 규제연구센터장은 17일 인터뷰에서 규제개혁 체감도가 낮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해외의 실증 분석을 보면 규제개혁을 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지만 그 효과는 최장 2년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금 규제개혁을 하더라도 2년만 지나면 낡은 규제, 해묵은 규제로 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가 생겨나는 속도를 규제개혁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규제개혁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규제개혁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정욱 규제연구센터장

그는 “지난 20년간 정부마다 규제개혁 정책을 내걸고 많은 제도를 도입했다. 효과를 낸 제도도 있지만, 어떤 제도는 도입만 하고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도 있다”면서 “제도를 실행해야 하는 정부나 규제기관이 준비가 미흡했고, 정권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다 보니 제도가 성숙하기 전에 사장되는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문재인정부도 규제 샌드박스를 포함해 혁신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운영 중인데 당장 성과가 나타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핵심적인 규제개혁 과제들을 발굴해내고 있는지, 정부가 규제개혁 제도를 제대로 실행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공무원 문화의 변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공무원 사회에서 규제는 잘 관리하고, 큰 변화 없이 유지하는 것이 미덕인 양 굳어져 있다”면서 “규제개혁 업무를 잘한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도 않고, 마치 가욋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추진력을 높일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규제개혁이 성과를 내기에는 투자도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규제개혁을 마치 ‘공짜’로 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제가 없어지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규제개혁은 책상에 앉아서 제도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 많은 전문가가 참여해야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규제개혁은 규제 철폐가 아닌 규제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신기술이 나왔을 때 그에 맞는 적절한 규제를 만들어내면 그 규제가 해외로 수출이 되고, 국제적인 기준을 선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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