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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안경과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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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11 23:07:19 수정 : 2021-03-25 13: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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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내선 항공기를 탄 적이 있는 한국인은 ‘객실 승무원’의 성별 구성과 나이 등의 면에서 ‘국적 항공사’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쉽사리 깨닫는다. 한국에서는 용모가 빼어난 젊은 여성이 압도적 다수인 반면, 미국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오히려 많고, 남성이 서빙을 직접 담당하기도 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안경을 쓴 ‘객실 승무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미국과 한국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 채용 기준과 근무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본 언론은 몇몇 기업이 여성 직원에게만 ‘직장 내 안경 착용 금지’ 지침을 적용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해당 기업이 제시한 사유는 다양했다. 백화점·면세점 등 유통업체는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는 ‘차가운 인상을 피하려고’라고 답했고, 항공사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었으며, 미용 분야는 ‘화장을 제대로 볼 수 없다’라는 점을 강조했고, 음식점·커피전문점 등은 ‘예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기업에서 남성 직원에게 ‘직장 내 안경 착용 금지’를 강요하는 규칙은 없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이와 유사한 사례는 국내 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직원 대상 ‘그루밍(꾸밈) 규칙’ 또는 ‘용모·복장 규정’이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 해당 기업에서는 직원의 용모를 감시하고 규정 위반 사항을 지적해 바로잡게 한다. 그 기업 직원에게는 몸단장이 ‘꾸밈 노동’이다. ‘용모·복장’을 단정히 하는 것이 노동에 빗댈 만큼 고단한 의무라는 말이다. 그곳에서는 특히 여성 직원의 용모를 중시하는데, ‘직장 내 안경 착용 금지’를 요구하는 곳도 드물지 않다. 명시적 ‘용모·복장 규정’이 없는 기업에서도 여성 직원이 안경을 착용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TV 여성 아나운서는 대체로 안경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안경 착용은 민낯을 대충 가리는 것 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안경 벗고 콘택트렌즈를 껴야 성의를 다해 용모를 꾸몄다는 의미가 전달된다. 그 결과, 그들은 눈 건강을 해칠 지경이 돼도 방송할 때면 콘택트렌즈를 낀다.

용모를 중시하는 ‘지배 질서’에 순응한 개인은 스스로 내면화한 규율에 따라 행동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를 ‘규율 권력’이라 했다. 그것은 개인의 신체·몸짓·시간·품행 등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미시적 권력이다. 그 결과,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을 감시하면서 ‘지배 질서’에 예속시키는 주체가 된다고 보았다. 현대인은 ‘멋진 몸매와 단정한 용모’를 ‘자기 관리’의 징표로 삼는다. 외모를 ‘인적 자본’의 하나로 여기는 사회의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개인의 몸에 대한 투자’로 이해하고, 합리적 선택의 하나로 간주한다. ‘외모 가꾸기에 실패한 사람’은 성격적 결함, 게으름, 건강한 생활습관의 부재와 연결된다.

현대 한국과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의 안경 착용 금지’는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러한 성차별은 ‘용모·복장 규정’을 고친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배 질서’ 즉 성·나이 등에 수반되는 사회적 역할 체계를 바꿔야 한다. 명시적 규정뿐만 아니라 암묵리에 작용하는 사회·문화적 관행도 고쳐야 한다. ‘지배 질서’의 재편 없이는 여성의 안경 착용을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는 행위’로 여기는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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