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라드(39)와 프랭크 램파드(41)는 200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을 지켜봤던 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들이다. 지능적 플레이와 뛰어난 리더십, 투지로 리버풀을 이끈 제라드와 엄청난 득점력과 냉철한 판단력의 램파드는 선수생활 내내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이제 두 사람 모두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아직도 라이벌의 경쟁은 계속된다. 이제는 그라운드 안이 아닌 그라운드 옆 사이드라인이 결전의 장소다. 제라드와 램파드 모두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덕분이다.
일단 감독으로서는 램파드가 한발 앞서갔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더비카운티 감독을 맡았던 그는 올 시즌 친정팀인 첼시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시즌 초 잠시 적응기간을 가지긴 했지만 현재는 7승2무2패 승점 23으로 4위를 달리는 등 안착에 성공했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도 16강 진출 가능성이 상당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징계로 선수를 보강하지 못해 유스 출신 선수들만으로 리그와 UCL을 병행해나간 것을 감안하면 매우 뛰어난 성적이다. 이제 램파드는 어엿한 빅리그 명문팀의 사령탑으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제라드는 아직 축구 변방에 속하는 스코틀랜드리그에 머물러 있다. 다만, 변방에서도 꾸준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지휘하고 있는 팀은 과거 셀틱과 함께 스코틀랜드를 양분하다 2010년대 초반 파산해 2012~2013시즌 4부리그부터 다시 재출발한 레인저스FC. 제라드는 다시 1부리그로 돌아와 셀틱의 아성에 도전중인 레인저스를 2018~2019시즌부터 맡고 있다.
아직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팀은 꾸준히 성장중이다. 부임 첫 시즌 2위로 2016~2017시즌 1부리그 재승격 뒤 최고 성적을 만들었다. 올 시즌은 한단계 팀을 더 끌어올렸다. 11경기를 마친 8일 현재 9승1무1패를 기록해 28로 셀틱과 승점이 같다. 골득실에 밀려 근소하게 2위일뿐 언제든지 왕좌 탈환을 노릴만한 페이스다.
유로파리그에서도 순항중이다. 레인저스는 8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열린 2019~2020 UEFA 유로파리그 G조 4차전을 가진 레인저스가 포르투갈 명문 포르투에 2-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레인저스는 G조에서 승점 7인 영보이스에 골득실만 밀린 2위로 올라섰다. 폐예노르트, 포르투는 승점 4로 레인저스 밑이다. 유럽대항전에서 잔뼈가 굵은 강자들과 한조에 묶여 32강 진출 가능성이 크지 않아보였지만 뛰어난 지도력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특히 홈에서 치른 유럽 대항전 8경기에서 단 1실점만 하는 짠물 수비가 돋보인다. 수비가 탄탄한 레인저스는 토너먼트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받고 있다. 만약, 기대가 실현돼 레인저스가 유로파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면 먼저 앞서간 램파드를 담숨에 따라잡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EPL에 감독으로 입성해 램파드와 감독으로서 다시 라이벌전을 펼쳐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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