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고령공화국’시대가 활짝 열렸다. 미국의 행정, 입법, 사법부는 70대 이상의 고령층이 장악했다. 행정부는 현재 73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하원은 79세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정점으로 다선 우대정책에 따라 70, 80대의 ‘고령’ 의원들이 주요 상임위원장과 야당 간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법원 대법관은 종신제로 86세의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 81세의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중심제 모델국가로 통하지만 개헌을 통한 근본적인 정치시스템의 변화가 어려워 국가 운영체제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급속한 노쇄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젊은층의 투표율이 낮아 장년층 또는 고령층의 유권자가 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 선거의 열쇠를 쥐고 있다. 미국인의 평균 연령도 지속적으로 올라가 미국이 고령화사회로 치닫고 있다.

◆미 지도자, 소련 정치국원 연상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티티코는 최근 미국의 입법, 사법, 행정부 지도자들의 모습이 옛 소련의 공산당 중앙위의 정치국원을 연상하게 한다고 보도했다. 옛소련에서 중추적인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위 정치국 위원들은 ‘고령지도자’의 상징이었고, 이들이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해 옛 소련이 붕괴하는 사태를 맞았다고 폴리티코가 강조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시절인 1982년 정치국원의 중간 나이는 71세였다.
미국에는 옛소련과 같은 중앙당 정치국원이 없지만 행정부와 입법부의 지도자들이 그들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폴리티코는 “2020년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할 때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유력후보 3인, 하원의장, 상원 원내대표의 중간 나이는 77세”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미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당선됐고, 2017년 1월 취임 당시 나이가 만 70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재선하면 만 74세로 집권 2기를 시작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하게 된다. 야당인 민주당 진영에서도 20명이 넘는 후보 중 고령 후보 3인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일을 기준으로 할 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79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77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71세 등이다. 이들 중 누가 당선돼도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세우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선두주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고령으로 인해 인지능력 검증대에 올랐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자신이 직접 한 말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잦은 말실수로 지지율 하락세에 직면했고, 이는 그의 나이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상하 의원, 평균 연령 높아져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평균 연령도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 따라 올해 1월 새로 출범한 의회에서 상원의원의 평균 나이는 62세, 하원의원은 58세였다. 이는 역대 의회 의원 중 최고령에 해당하고, 그 전 의회 개원 당시의 상원의원 62세, 하원의원 58세보다 약간 올라간 것이다. 폴리티코는 의원 평균 연령이 1970년대에는 점점 낮아졌으나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출신의 하원의장인 펠로시는 79세이고, 상원의 다수당인 공화당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넬은 77세이다. 백전노장인 펠로시 의장은 독불장군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맞수로 꼽힌다. 매코넬 대표는 의회에서 야당인 민주당을 제어하는 야전군 사령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미 의회에서는 다선 우대원칙에 따라 고령의 현역 의원이 주요 상임위원장이나 야당 간사를 맡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척 그래슬리 상원 법사위원장(공화, 아이오와)은 현재 86세이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도 86세이다. 이들과 함께 85세의 리처드 셸비 상원의원(공화, 앨라배마)도 상원 세출위원장을 맡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스테니 호이어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80세, 흑인 여성인 맥신 워터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은 81세이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는 68세이다. 트럼프 정부에서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81세이다.
미국 공직사회도 늙어가고 있다. 미국 연방 공무원 중에서 55세 이상이 전체의 약 30%를 점하고 있다. 약 20년 전에는 그 비율이 15%에 그쳤었다.

◆미 선거, 베이비붐 세대가 좌우
미국에서 선거는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좌우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2030년이면 모두 65세 이상이 된다. 2020년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할 때 65세 이상 유권자가 전체의 23%를 차지한다고 센서스국이 밝혔다.
미국에서 유권자의 연령이 올라갈수록 투표 참여 비율이 올라간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2016년 대선에서 65세 이상 연령층의 투표 참여 비율은 71%에 달했다. 또 45∼64세는 67%, 30세∼44세는 59%, 18∼29세는 46%에 그쳤다.

미국의 상·하의원 후보는 당내 예비경선을 거치게 마련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예비선거에서 젊은층과 중·장년층의 참여 비율 차이는 본 선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고령층이 장악하고 있는 예비경선에서 나이가 많은 후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포틀랜드주립대 조사에서 2016년에 실시된 미국 주요 50개 도시 지방 선거 투표자의 평균 연령은 57세로 나타났다.
폴리티코는 미국의 정치시스템도 낡았다고 강조했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선거인단을 통한 대통령 선출 방식이다. 트럼프는 지난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총득표 수에서 뒤졌으나 주단위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해 대통령이 됐다.
◆미국인 평균나이 38세
미국이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미 센서스국은 미국인의 평균 연령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젊은층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그동안 젊은 외국인의 유입으로 고령화를 막았다. 이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이민자의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센서스국은 2018년을 기준으로 미국인 평균 나이는 38.2세라고 최근 밝혔다. 이는 2010년 당시의 37.2세에서 올라간 것이다. 미국의 평균 나이는 주별로 차이가 크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에 따라 미국의 동북부 지역 주민의 평균 나이가 급속하게 올라가고 있다고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이 최근 보도했다. 메인주 주민의 평균 연령은 45세, 뉴햄프셔, 버몬트, 웨스트버지니아, 플로리다 주민은 42세로 미국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 미국에서 주민의 평균 나이가 가장 낮은 주는 유타로 31세이다. 텍사스, 알래스카, 워싱턴 주민의 평균 나이도 35세 이하로 나타났다.

2016년을 기준으로 미국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한 비율은 16%로 나타났다. 이는 2010년에 비해 30%가 늘어난 수치이다. 그 기간 동안 18세 이하 연령층은 1.1%가량이 줄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다른 인종에 비해 백인의 출산율이 떨어져 이것이 백인 인구 감소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에서 백인 인구 감소와 소수 인종 증가로 인종별 인구 구성비도 변하고 있다. 센서스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 사이에 백인은 고작 22만명이 늘었다. 이 기간 동안 흑인은 300만명, 히스패닉은 900만명 가량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더 힐은 미국에서 출산보다 이민이 인구 구성비 변화의 핵심요인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 규제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약 140만명이 출생했고, 100만명 가량의 외국인 이민자가 유입됐다. 센서스국은 2030년에는 외국인 이민자가 출생자보다 10만명 가량 더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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