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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구멍 뚫어 공기·식수 공급 … 40시간 ‘기적의 드라마’ [뉴스투데이]

입력 : 2019-09-10 23:00:00 수정 : 2019-09-10 22: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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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해안서 전도 ‘골든레이호 전원 구조’ 긴박했던 구조작업 / 고립된 선원들 선체 두드리자 / 전문가들 모여 밤새 위치 파악 / 타공 부위 넓히며 탈출구 확보 / 3명 먼저 꺼낸뒤 1명 추가 구조 / “구조소식 우리 국민에 큰 기쁨” / 文대통령, 트럼프에 감사 서한
“살았다” 미국 동남부 해안에서 전도된 골든레이호에 하루 반나절 이상 갇혔다가 9일(현지시간) 극적으로 구조된 한국인 선원이 선체를 빠져나와 해안경비대원들을 보자 안도한 듯 미소를 짓고 있다. 미 해안경비대 제공

“정말 감사합니다. 놀라운 일이에요. 여러분이 이걸 해내다니, 내 경력 최고의 날입니다.”

 

미국 해안경비대(USCG) 찰스턴지구대를 이끄는 존 리드 대령은 9일(현지시간) 남동부 조지아주 앞바다에 전도된 차량운반선 ‘골든레이(Golden Ray)’호에 갇혔던 선원 4명을 전원 구조하는 쾌거를 달성하자 대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생수로 얼굴을 적시고 있던 최후의 생존자는 벌떡 일어나 오른손을 추켜들며 “감사합니다, 여러분”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약 40시간20분 동안 선내 엔진 컨트롤룸 안에서 칠흑같은 어둠과 무더위, 갈증, 배고픔, 고립감 등과 싸우고 난 후였으나 USCG가 트위터에 올린 동영상 속 모습은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미국 해안경비대 찰스턴지구대를 이끄는 존 리드 대령이 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자연자원부 해안자원국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골든레이호에 고립된 선원 구조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브런즈윅=연합뉴스

브런즈윅뉴스 등에 따르면 배 안에 고립됐던 세 명이 이날 오후 3시쯤 구조됐고, 5시50분쯤 마지막 네 번째 선원이 배에서 빠져나왔다. 지난 8일 오전 1시30분쯤 배가 기울기 시작한 지 10시간 만에 한국인 6명, 필리핀인 13명, 미국인 도선사 1명이 구조되거나 대피한 데 이어, 이날 한국인 1등·2등·3등 기관사와 실습기관사 4명이 추가 구조되면서 승선자 24명이 모두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들은 브런즈윅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리드 대령은 “4명 모두 내일(11일) 퇴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원 구조 기적은 생존자들의 강한 의지가 만들어냈다. 8일 오전 2시쯤 911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헬기 등을 이용해 20명을 먼저 구조했으나, 선체에 붙은 불로 인한 연기와 기상상황 등 악조건 때문에 일단 철수해야 했다. 8일 오후 수색·구조작업을 재개한 구조대는 선체 후미 쪽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립된 선원들이 안간힘을 다해 외부에 생존신호를 전한 것이다. 이를 감지한 구조대 역시 배를 두드려 ‘구조작전이 진행 중이니 계속 버텨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USCG는 첨단장비와 전문가들을 투입해 본격적인 구조에 나섰다. 생존자들의 정확한 위치 파악이 급선무였다. 리드 대령은 “전 세계의 기술 전문가들이 모여 USCG, 소방당국 등과 긴밀히 협조해 소리가 나는 위치를 찾았다”며 “밤새 이 작업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구조대원들은 이날 정오쯤 생존자들이 갇힌 선미쪽 프로펠러 샤프트룸 쪽에 처음 근접했다. 이들은 선체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내부 확인용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후 3인치짜리 구멍을 내 신선한 공기와 식수, 음식을 전달했다. 구조대는 가로 2피트(약 60㎝) 세로 3피트(약 91㎝) 구멍을 뚫은 뒤 점을 연결하는 것처럼 3인치씩 키워 탈출구를 만들었다. 드디어 오후 3시쯤 승무원 3명이 구조됐다. 리드 대령은 “두 명이 먼저 자기 힘으로 (대기 중인 보트까지) 걸어나올 수 있었으며, 세번째 생존자는 들것에 실려갔다”고 설명했다.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항 인근 해상에서 전도된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 선미 쪽에서 9일(현지시간) 구조팀이 선체 안에 고립된 선원들을 구조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최후의 생존자는 엔진 컨트롤룸 강화유리 뒤편에 고립돼 있었던 까닭에 구조가 3시간가량 지연됐다. 그는 구조대원들이 낮 최고기온 30도의 외부보다 상당히 더웠다고 토로할 정도의 악조건 속에서 앞선 3명처럼 물과 음식물을 제공받지 못했음에도 장시간을 버틴 끝에 맑은 공기를 다시 쐴 수 있었다. 마지막 구조자는 병원에서 김영준 애틀랜타 총영사를 만나 “깜깜한 상황에서 정말 길었고 못 견딜 것 같았다”며 악몽 같았던 40시간을 떠올렸다고 한다.

 

구조가 마무리됨에 따라 당국은 이제 선체 인양과 해상 통로 재개, 해양 오염 방지 등으로 작업 초점을 옮기고 있다. 사고 원인 조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일본 선사 MOL(미쓰이OSK)이 운용하는 에메랄드에이스호가 골든레이호를 지나쳐 입항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김 총영사는 “당국 조사를 기다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 국민 4명이 미 해안경비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노력으로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은 우리 국민에게 큰 안도와 기쁨을 줬다”며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칼 슐츠 USCG 사령관에게도 서한을 보내 대원들의 용기와 헌신을 치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선원 구조 소식을 리트윗하면서 “고맙다. USCG! 잘했다(great job)!!”고 했다.

미 해안경비대 구조대원들이 9일(현지시간) 배안에 갇혀 있던 마지막 선원을 구출한 뒤 경비정을 타고 기지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골든레이호 소속사인 현대글로비스는 10일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해 주신 미국 구조 당국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사고현장 안팎에서 적극적인 구조 외교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우리 외교부 당국에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유태영·김선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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