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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그림, 나도 산다”… 온라인 공구 새바람 [S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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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01 06:00:00 수정 : 2023-12-10 15: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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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활용 온라인 경매 활성화 / 20∼40대의 ‘아트테크’로 자리 잡아 / 가파른 온라인 경매 성장세 케이옥션 / 2018년 총 낙찰금액 151억여원 / 2006년 시행 첫해보다 75배 이상 올라 / 장보듯 쉽게 중저가 미술품 사고팔아 / 낙찰자 연령 30대 28% 최다·20대 16% / 경매업체 고객 모시기 분주 / 근대 미술품 찾는 젊은층 비기너들 늘어 / 아트토이·디자인 가구 등 아이템 발굴 / 소액 온라인 투자 플랫폼도 활기 띠어 / 이중섭 작품 ‘무제’ 3분 만에 모금 완료 / 이소영 소통하는 그림연구소 대표 / 가치 판단 어렵고 환금성 낮아 / 거래 수수료도 최대 30% 달해 / 사고팔기 반복 땐 수수료 폭탄

#1. 회사원 A(30·여)씨는 얼마 전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킹스 오브 컵스(Kings Of Cups)’ 구아슈(불투명 수채 물감) 원작을 구매했다. 이 작품은 수집가들의 필수 소장품인 달리의 타로 판화 시리즈 중 하나로, 1971년 제작됐다. A4용지 남짓한 작은 사이즈의 판화 작품이지만 가격은 3700만원에 달했다.

 

‘금수저‘가 아닌 평범한 사회 초년생 A씨가 이처럼 그림을 선뜻 살 수 있던 것은 ‘공동구매’ 방식 덕분이었다. A씨는 지난 14일 한 미술품 판매회사가 진행한 온라인 공동구매에서 100만원 남짓을 투자해 그림 소유권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공동구매는 시작 4분 만에 마감됐다. A씨는 “이전에는 내가 명화를 소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며 “소액으로 미술품을 구매하고, 재테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동구매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걸지는 못하지만 구매자들에게만 공개되는 공간에서 언제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2. 대학교 1학년생인 B(19·여)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비 80여만원을 모아 생애 처음으로 미술품을 구매했다. 또래 친구들이 피겨나 운동화를 모으는 것처럼 평소 관심이 많았던 미술 작품 ‘컬렉팅(수집)‘에 나선 것이다. B씨는 6개월 전부터 전 세계 미술 작품의 특징, 가격, 작가들의 배경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참고하고, ‘아트 컬렉팅’ 강의를 들어온 끝에 첫 작품을 골랐다.

 

폴란드 출신 신진 작가 아네타 카이저의 유화로, 구상과 추상의 구분이 모호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돈 많은 사람들의 취미’로 여기던 미술 시장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등을 통해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확보되면서 젊은 세대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미술품 수집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 경매 성장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30일 글로벌 보험사 히스콕스의 ‘2019년 온라인 예술품 거래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을 통한 예술품 판매는 2013년 15억700만달러에서 지난해 46억3600만달러로 3배 가까이 성장했다. 전 세계 작가들의 작품 정보를 공유하고 판매하는 온라인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 ‘아트넷(Artnet)’, ‘아트스페이스(Artspace)’ 등은 미술 시장의 문턱을 낮췄고,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기업인 소더비는 고객의 취향을 기반으로 예술품을 추천하는 인공지능업체 스레드 지니어스(Thread Genius)를 지난해 1월 인수하는 등 ‘아트 테크놀로지’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찬바람’이 불고 있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도 온라인 분야만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케이옥션의 경우, 지난해 총 낙찰금액은 온라인 경매 시행 첫해(2006년)보다 75배 이상 높은 151억6700만여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온라인 경매는 59차례(오프라인 6회) 열렸으며, 올해도 이달까지만 벌써 39회 진행됐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는 “많은 사람이 장을 보듯 인터넷으로 쉽게 미술품을 구매하고 있다”며 “매주 실시하는 온라인 경매에 수십만∼수백만원 등 중저가의 작품들이 출품되면서 억대의 작품만 거래된다는 미술품 경매에 대한 선입견과 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미술 시장에 ‘온라인 바람’이 불게 된 데는 블록체인 기술 발달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암호화를 통해 해킹으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보호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온라인 미술 시장의 걸림돌이 됐던 고가 미술품의 복제·사기·가격 거품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록된 작품명, 거래과정, 최종 낙찰 가격 등은 곧 디지털 인증서가 돼, 작품의 진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온라인화는 그간 미술 시장에서 소외됐던 젊은층의 유입을 이끌어냈다. 스위스 금융기업인 UBS와 아트바젤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100만달러 이상 미술 작품을 구매한 ‘아트 컬렉터(미술품 수집가)’ 중 45%가 22세에서 37세 사이의 젊은층이었다.

국내 미술 시장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경매사 서울옥션블루의 낙찰자 분석 결과, 연령별 비중이 30대가 28%로 가장 높았으며, 40대가 25%로 2위를, 50대 이상은 22%로 나타났다. 20대는 16%로 다소 낮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년 대비 25%나 증가했다. 손지성 서울옥션 홍보팀장은 “최근 근대 미술품 거래가 잦은 것도 젊은 비기너들의 유입이 늘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추상, 단색화 등 이미 검증된 작품들을 보유한 ‘큰손’ 컬렉터들이 새 수집 분야를 찾고 있는 사이 신규 컬렉터들은 인지도, 가격 등의 측면에서 저평가된 근대 미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술품 경매 업체들은 젊은 비기너들을 끌어모으고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해 중저가 미술품의 출품은 물론 경매 품목과 형태를 다변화하고 있다. 서울옥션의 미술 대중화 브랜드인 프린트베이커리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유명 작가들의 원화를 디지털 판화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옥션블루는 인공지능(AI)형 큐레이팅 시스템을 개발해 전시회와 갤러리를 융합한 중저가 미술품 판매 및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강화할 방침이며 아트토이, 디자인 가구, 빈티지, 스니커즈 등의 새로운 경매 아이템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케이옥션 또한 스포츠스타나 아이돌이 기증한 물품과 보석, 악기 등을 경매에 부치고 있다.

 

미술품을 나눠 소유한 뒤 되파는 형태의 온라인 공동구매도 젊은층의 ‘아트테크(아트+재테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1만원대 투자가 가능한 미술품 온라인 소액 투자 서비스 아트투게더는 지난해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순회 희극배우들과 부엉이’를 위한 공동구매 모금액 3091만원을 단 1분 만에 채웠다. 총 38명의 참여자가 평균 80만원을 투자해 피카소 그림의 소유권을 얻은 것이다.

 

미술품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인 아트앤가이드 역시 지난해 말부터 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등 유명 작가 작품 18점의 공동구매를 진행해 목표 모금액을 모두 달성했다. 올해 1월 김환기 작품 ‘24-II-68’(모집금액 5800만원)은 7분 만에, 지난해 이중섭 작품 ‘무제’(모집금액 5200만원)는 3분 만에 모금이 완료됐다. 특히 지난해 10월 공동구매한 김환기의 ‘산월’(모집금액 4500만원)은 1개월 뒤 5500만원에 매각돼 22%의 수익률을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재욱 아트앤가이드(열매컴퍼니) 대표는 “유명작가의 작품들은 고가에서 거래되다 보니 가격이 오를 것을 확신해도 개인이 구매할 수가 없다”며 “소유권을 분할하고 이를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대중들이 쉽게 그림을 구매하고 감상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품, 매력적 투자재지만 단기 수익만 노리면 안 돼”

 

“음악과는 달리 미술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예술품입니다. 와인이나 자동차처럼 소모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만을 목적으로 그림을 사겠다는 이들에게는 다른 투자처를 알아보길 권합니다.”

 

유튜브와 다양한 기관에서 ‘아트컬렉팅(미술품 수집)’ 강연을 하고 있는 이소영(사진) 소통하는 그림 연구소 대표는 3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술품은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이라는 인식이 최근 상당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간 갤러리나 경매사를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이뤄지던 미술품 거래 채널이 인터넷의 발달로 다변화하면서 수많은 정보가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격 거품’이 꺼진 덕에 그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기존 미술 시장의 주 고객인 50∼60대 외에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 등으로 다양하다.

 

이 대표는 미술품은 매력적인 투자재라고 말한다. 공산품과는 달리 미술품은 전 세계에서 딱 한 점이라는 제한된 공급에 비해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가격이 기하급수로 올라 높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게다가 마음껏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금전적 이익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소비재이자 투자재인 셈이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일고 있는 ‘아트테크(아트+재테크)’ 붐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모든 아트테크가 핑크빛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치 판단이 어려운 데다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낮은 환금성과 높은 수수료 등을 유의해야 하는 탓이다. 그는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작품이 오르냐’고 묻지만 미술품은 주식처럼 객관적인 수치로 판단하기가 어려워 대답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미술품 투자는 부동산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가치가 상승하길 기다려야 한다”면서 “미술품 거래 수수료는 15∼30%로, 다른 재테크보다 높다.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단기적 수익을 노리다 보면 자칫 ‘수수료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우표를 모을 때 가격 상승을 예측하고 모으지 않는 것처럼 아트컬렉팅은 자신만의 미술관을 만들며 행복을 느끼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후견인 제도가 잘 갖춰지지 않았지만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처럼 일종의 후견인이 돼 신진작가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 역시 아트컬렉팅의 또 다른 재미”라고 설명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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