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포엣’ 시리즈는 아시아출판사에서 한글과 영어로 국내 시인들의 시를 동시에 게재하는 국내 유일 시집으로 ‘아마존’에서도 세계 독자들에게 판매한다. ‘K-픽션’에 이어 지난해 출범한 이 시리즈는 그동안 대표적인 한국 시인들의 시들 중에서 골라 실었지만, 이번에 출간한 두 권은 신작시를 청탁해 만들었다. 각각 7, 8번째 시리즈로 선보인 정일근의 ‘저녁의 고래’(Evening of the Whale·오른쪽)와 김정환의 ‘자수견본집’(An embroidery sampler·왼쪽)이 그것이다.
김정환 시인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그동안 많은 번역서를 출간해온 경력을 바탕으로 직접 자신이 영문으로 번역했다.
김 시인은 “내 시는 어렵다는 말이 많은데 다른 이에게 번역을 해 달라고 하면 민폐 아닐까 싶어, 한글 책보다 영어 책을 더 본 세월이 50년이라 직접 해보았다”면서 “시라는 게 언어를 재규정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다른 언어로 내 시를 체험해 보고, 전에 없는 표현영역이 생겼다는 점에서 직접 해보길 잘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의 이번 시집 표제는 그리스신화 속 페넬로페에서 따왔다. “그리도/ 낮게 다정하게 속살거리는/ 실이여,/ 더 낮게 더 다정하게/ 속살거리는 실의/ 길이여,/ 육욕의 미로를 풀고 대낮의/ 죽음을 짜는/ 갈수록 가늘어지는 실이여,/ 얼마나 더 가야 올 것인가/ 오고야 말 것이?/ 내 생의 선율 투명(透明)/ 자수견본집.”(‘페넬로페의 실’)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서정시를 써온 정일근 시인이 펴낸 ‘저녁의 고래’는 대구에 거주하는 부부번역가 다니엘 토드 파커와 지영실이 번역했다. 정 시인은 “제 시가 어떻게 번역될지 몰라 공포감이 있는 건 사실인데, 이 고민은 내 몫이 아니라 번역자의 몫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면서 “이번 시들은 환경과 생명을 보호하는 운동가로 접근하지 않고 시인으로 고래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시들이라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내 친구 고래는 알 것이네/ 저녁이 와야 우주의 밤 오고/ 밤이 와야 바다의 새벽 와서/ 숨 쉬는 하루를 선물 받아/ 일해야 그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과/ 살아야 그 하루를 생존할 수 있는 고래는/ 다시 저녁이 올 때까지 관절 뚝뚝 꺾으며/ 사는 일과 살아내야 하는 저녁의 이유를/ 제 몸에 나이 깊게 새기며 알 것이니,”(‘저녁의 고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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