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여) 사건’ 첫 공판의 여진이 하루가 지난 13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씨 측이 전날 재판에서 전 남편 강모(36)씨를 ‘변태성욕자’로 몰며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한데 이어 자신에게 의붓아들 살해 의혹을 제기한 현 남편 홍모(37)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일이 알려지면서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고씨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재판서 우발적 범행 강조… 얼굴 기어코 가려
고씨의 변호인인 A 변호사는 지난 12일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첫 공판에서 수사기관이 밝힌 고씨의 범행 행각을 정면 반박했다. A 변호사는 고씨가 수사 과정에서부터 주장해온대로 “피해자(강씨)가 자신의 무리한 성적 요구를 피고인(고씨)이 거부하지 않았던 과거를 기대한 게 비극을 낳게된 단초”라고 말했다. 그는 고씨가 폐쇄회로(CC)TV에 얼굴을 노출한 점을 근거로 들어 계획 범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졸피뎀 사용과 ‘뼈의 중량’ 등 인터넷 검색 기록도 범행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인터넷 검색과 관련해선 현 남편 보양식으로 감자탕을 준비하려고 검색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 사건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에 고씨 측에 “우발적 살인의 근거를 가지고 오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고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 객관적인 근거가 아닌 일방적인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고씨 측 변론에 대해 “이 사건의 단초를 피해자의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고씨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도 “피고인의 변호인은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방적인 진술을 다수 했다”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점을 악용한 터무니없는 진술들을 응당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청석에서도 이따금씩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과 함께 탄식이 터져나왔다.
이날 약 두 달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씨는 연녹색 수의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을 가린 채 법정에 들어섰다. 고씨가 입장하자 법정이 술렁였고, 일부 방청객은 그에게 “살인마!”라고 소리치다 법원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했다. 재판이 끝난 뒤 고씨가 법정에서 나와 호송차에 오르기 전에는 성난 시민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고씨의 다음 재판은 다음달 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현 남편은 명예훼손 고소… 비판 목소리 고조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달 22일 변호인을 통해 현 남편 홍씨에 대한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현 남편이 자신을 의붓아들 살인자로 몰았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고씨의 의붓아들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상당경찰서에 이 고소건을 배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씨는 지난 6월13일 고씨가 자신을 아들을 살해했다며 제주지검에 고소했다. 이에 경찰은 고씨에게 살인 혐의를, 홍씨에겐 과실치사 혐의를 각각 적용해 입건한 뒤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사망 당시 4살이던 홍씨의 아들은 지난 3월2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자택의 작은방 침대에서 홍씨와 함께 잠을 자던 중 숨졌다.

고씨의 재판 내용과 현 남편 고소 사실이 알려진 뒤 곳곳에서 거센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관련 소식을 접했다는 직장인 권모(42)씨는 “재판에서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걸 보고 그 뻔뻔함에 기가 막혔다”며 “열에 아홉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기사 댓글란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도 “차라리 죄를 인정하고 싹싹 비는 게 나았을 것”,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 “머리채가 잡힌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같은 의견 개진이 잇따랐다. 고씨의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참여인원이 20만명을 넘어 청와대의 답변을 이끌어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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