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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맥주는 맛없다?…‘맥주덕후’라면 다르게 생각할 것”

입력 : 2019-07-06 15:00:00 수정 : 2019-07-06 14: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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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 잔과 목숨의 보증만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명예 같은 건 버려도 괜찮다.’ (셰익스피어)

 

맥주를 향한 사랑이 지극한 건 비단 셰익스피어만이 아니다. 한국인에게도 맥주는 소주와 함께 ‘소울 주류’ 명성을 이어왔다. 2015년 기준 주류 시장에서 출고량 1위에 등극한 맥주는 해마다 50~60%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국내에서도 직접 맥주를 만들어 먹는 ‘홈브루(Home brew)족’이 늘고 있다. ‘100만 맥덕(‘맥주’와 ‘덕후’를 합친 말) 양성’이 꿈이라는 김만제(35) 어메이징 브루잉 아카데미 원장을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함께 수제맥주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만제 어메이징 브루잉 아카데미 원장. 김만제 원장 제공

◆“집에선 라거보다 에일이 만들기 쉬워”

 

한낮 기온이 섭씨 31도를 넘나드는 초여름이라 그런지 오전 10시였음에도 사무실 안은 열기로 뜨끈했다. 업소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솥에서 몇십L의 물이 끓고 있었다. 맥주에 들어가는 분쇄 맥아를 삶는 용도다.

 

이날 강의를 진행한 김만제 원장은 독일 베를린 VLB 브루마스터(Brew Master) 과정을 밟은 맥주 전문가다. 2009년부터 ‘살찐 돼지의 맥주 강좌’라는 맥주 전문 블로그를 10년째 꾸려오고 있으며 그가 리뷰한 맥주만 해도 2000종이 넘는다. 서울 이태원에서 ‘사계’라는 펍을 운영하던 그는 ‘펍이나 양조장만으로 ‘맥덕’을 양성해 수제맥주 시장을 키우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교육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3월에 개원했다는 아카데미는 벌써 10기 수강생을 배출하고 이번에 11기를 맞았다. 기업 출강 등 원데이클래스까지 포함하면 김 원장을 거쳐 간 수강생은 수백명이라고 한다.

 

그가 어디선가 7kg짜리 독일산 맥아 한 봉지를 꺼내왔다. 이날 우리가 참고할 수제맥주 레시피는 ‘벨지안 골든 스트롱 에일’. 달콤한 향과 쌉쌀한 맛이 특징인 맥주로 벨기에 맥주 ‘듀벨‘이 유명하다.

 

맥주의 스타일은 라거와 에일이 대표적이다. 주원료인 효모종에 따라 종류가 나뉘며 보통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에일은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발효해 만든다. 우리에게 친숙한 ‘카스’, ‘하이트’, ‘테라’ 등의 국산맥주는 모두 라거의 한 종류인 ‘페일라거’다.

 

이날 에일 스타일의 레시피를 택한 이유에 대해 김 원장은 “제조 과정의 용이함 때문에 아무래도 개인이 만들기엔 라거보단 에일이 쉬운 편”이라며 “홈브루에서 발전한 수제맥주가 에일 위주인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했다.

 

김만제 원장이 만든 ‘인삼바이젠’. 나진희 기자

◆“국산맥주 맛 없지 않아”

 

맥아를 62~68도 온도의 물에 넣고 끓여 맥아즙을 만들었다. 맥아와 물이 만나는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 계속 저어줬다. 무려 1시간 동안 말이다.

 

사실상 맥주 제조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공정마다 평균 1시간이 소요됐으며 그중 대부분은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중간 중간 김 원장과 그의 맥주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충분했다.

 

‘국산맥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 원장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게 저 같은 전문가는 국산맥주 안 마실 거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도 ‘카스’, ‘하이트’, ’테라’ 등 다 마신다. 여름에 시원하게 꿀떡꿀떡 마실 수 있는 ‘페일라거’ 스타일로 평가했을 때 국산맥주는 맛없지 않다. 사실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일본, 독일 등 어느 나라든 맥주 마니아들은 자국의 페일라거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에선 아사히가, 미국에선 버드와이저가 우리나라 ‘카스’ 등과 같이 욕을 먹는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맥주 전문가가 추천하는 편의점 맥주는 무엇일까. 김 원장은 “편의점에선 맥주 마니아가 되기 힘들다. 50가지 맥주 중 9할이 ‘페일라거’”라며 “굳이 뽑자면 그 중에 ‘필스너우르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몇 시간의 정성과 기다림으로 만들어지는 ‘수제맥주’

 

맥아를 끓이고 있다. 나진희 기자
1시간 동안 잘 저으며 끓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진희 기자

1시간을 끓여낸 맥아에선 어릴 적 집에서 만들던 달큰한 식혜 냄새가 났다. 맥아즙을 깨끗이 여과해내기 위해 끓여낸 맥아즙을 빼내었다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과정을 약 열 번 정도 되풀이하면 통속의 낱알들이 자리를 잡는다. 본격적인 여과 과정을 통해 약 1시간 동안 맥아즙을 추출한 후, 뜨거운 물을 다시 맥아가 든 통에 부어 두 번째 맥아즙을 우려냈다. 찻잎을 두 번 우려내어 한 잔에 섞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렇게 나온 맥아즙이 총 26L. 이후 과정을 거쳐 수분이 증발하면 20L 정도가 된다고 했다. 여과 후 남은 맥아 찌꺼기는 가축 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연계된 축사가 없다면 음식물쓰레기로 처리되는 것이 보통이다.

 

걸러낸 맥아 찌꺼기는 보통 가축 사료로 쓰이거나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다. 나진희 기자

김 원장은 “수입맥주 중에 ‘맥아의 첫즙만 담았다’고 광고하는 제품이 있다. 일반 소비자가 보기엔 그럴싸한 표현”이라며 “따지고 보면 한 번에 많은 양을 끓여내는지, 두 단계에 걸쳐 끓여내는지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맥주 제조 과정을 모르는 소비자로선 광고에 혹하기 쉽다고도 했다.

 

맥아즙에 홉을 첨가하고 있다. 나진희 기자

맥주의 풍미를 담당하는 홉을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넣고 1시간 동안 끓였다. 끓이는 동안 가스 불 앞에 서서 거품이 바르르 끓어 넘치지 않도록 부채질을 계속해주어야 했다.

 

냉각기를 넣어 맥아즙의 온도를 낮추는 모습. 나진희 기자

그 후 홉을 섞은 맥아즙을 발효실에 넣기 전 냉각기를 이용해 물 온도를 낮췄다. 여름이라 온도가 잘 내려가지 않아 솥 앞에 서서 주걱으로 약 20분간 용액을 휘었다. 최적 온도는 28도였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32도에서 더 내려가지 않아 여과 후 통째로 냉장고에 잠깐 넣었다 빼 온도를 내렸다. 그 후 효모를 넣고 발효실에 넣었다.

 

발효실에서 약 3주간 숙성을 거친다. 나진희 기자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24시간 19도가 유지되는 발효실에서 약 3주 동안 숙성시킨 후 설탕을 넣어 탄산화하고 페트병에 넣는 병입 과정을 마쳐야 수제맥주가 완성된다. 여러모로 기다림과 정성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사람들이 더 다양한 맥주 경험해봤으면”

 

직접 약 4시간 동안 수제맥주 제조 체험을 해보니 일반인이 열정만으로 집에서 맥주를 만들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기초도구만해도 10~20만원대. 대부분의 레시피가 20L 기준이라 가정집에선 대용량의 맥주를 만들고 보관하는 데에 제약이 많고 공정 과정도 까다롭다.

 

그럼에도 ‘나만의 맥주’를 만드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김 원장은 맥주에 인삼을 접목해 만든 ‘인삼바이젠’ 한 잔을 권하며 “수강생 중에 바리스타가 있었는데 자신이 직접 볶은 커피를 넣어 맥주를 만들기도 했다”며 “서울에 10곳 정도 맥주 아카데미가 있다. 이런 곳이나 공방에서 여러 명이 모여 맥주를 만들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자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그는 “펍이나 양조장만으로 ‘맥덕’을 양성해 시장을 키우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며 “그래서 맥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맥주의 세계에 눈을 뜨길 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술 뭐 좋아하니?’ 물어보면 3명 중의 1명은 ‘맥주’라고 말한다.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맥주에 관심은 없다”며 “조금만 더 알아보면 개성 있고 맛있는 맥주가 정말 많은데 이를 모르다 나중에 알게 되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20~30대 젊은이들은 앞으로 술 마실 수 있는 날이 60년은 더 있지 않겠나? 그동안 더 맛있는 맥주를 경험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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