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이나 해병대에서 복무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목격했던 것이 박격포다. 수십㎏에 달하는 무거운 박격포를 분해해 포신과 포판, 포다리를 짊어지고 행군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야외 기동훈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박격포를 산 정상에 배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포신이 바위나 나무에 부딪힐까봐 조심스럽게 비탈길을 올라가면서 숨이 턱턱 막히고 허리가 아픈 순간을 겪는다. 군장과 개인화기까지 추가되면 금세 앓는 소리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듯 장병들의 허리를 휘게 만든 ‘고통의 상징’인 박격포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파괴하기 위해 포탄을 쏘면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박격포는 첨단유도장비의 도움을 받아 미사일 못지 않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병사들이 운반하는 대신 차량이나 장갑차에 탑재돼 신속하게 이동한다. 말 그대로 ‘화려한 변신’이다. 우리 군도 신형 120㎜ 자주박격포를 개발, 일선에 배치할 예정이다.
◆보병의 든든한 도우미
박격포는 표적에 명중시키기 어려워 ‘똥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보병부대에는 꼭 필요한 존재다.
박격포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대전부터였다. 참호전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연합군과 독일군은 상대방의 참호 위로 포탄을 떨어뜨리는 화포를 필요로 했다. 고각 사격이 가능하고 구조가 간단해 소대, 중대 단위 부대에서도 쓸 수 있으며 별도의 지원부대가 필요치 않은 박격포는 적 참호를 공격해야 하는 최전선 부대에 안성맞춤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연합군과 추축군은 다양한 종류의 박격포를 개발, 상대방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특히 독일군은 독일군은 600㎜ 구경의 칼 자주박격포를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면서 박격포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규격이 통일되는 추세를 보였다. 수십㎏에 달하는 박격포를 사람이 운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박격포는 신형일수록 무게는 가볍고 사거리는 늘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은 60㎜, 81㎜, 4.2인치, 120㎜ 반면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은 82㎜, 120㎜, 160㎜, 240㎜ 등으로 규격화됐다.
정밀유도폭탄과 미사일의 발달로 박격포는 한때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박격포는 보병부대에 필수적인 무기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베트남 정글에 주둔하던 미군은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기습 공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주둔하던 미군에게 항공기 폭격이나 중포(重砲)의 지원사격을 요청할 필요 없이 신속하게 화력지원을 할 수 있는 박격포는 없어서는 안될 무기였다.
박격포는 기계화부대의 화력지원에도 널리 쓰인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기계화부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해 81㎜나 120㎜ 박격포를 장갑차에 탑재하는 형태다. 기계화부대가 화력지원을 필요로 할 때 신속하게 대응이 가능하다. 우리 군도 K242A1 4.2인치 박격포 탑재 장갑차와 K281A1 81㎜ 박격포 탑재 장갑차를 운용중이다.
최근에는 박격포의 명중률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위성항법장치(GPS)나 적외선 유도장치를 장착, 포탄 한 발로 전차를 파괴하는 ‘120㎜ 스마트 박격포탄’이 그것이다. 콘크리트 벙커 등 81㎜ 박격포로는 파괴가 쉽지 않은 표적이 늘어나고, 노후한 4.2인치 박격포가 1990년대 이후 120㎜ 박격포로 대체된 데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 IMI사는 GPS와 관성항법장치(INS)를 장착한 도크란 120㎜ 박격포탄을 지난해 공개했다. 사거리가 8㎞에 달하는 도크란은 오차가 10m에 불과할 정도로 정확도가 높아 적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공중에서도 작동이 가능해 공중폭발탄이나 표적 공격탄으로도 쓸 수 있다. 미국의 XM395는 2012년 아프간 주둔 미군이 처음 사용했다. 당시 표적으로부터 4m 떨어진 곳에 착탄할 정도로 명중률이 높았다. 120㎜ 박격포를 최대 사거리로 발사할 경우 오차범위가 130m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미국 본토 기지서 예멘이나 이라크 등을 폭격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기술이 발달했지만, 박격포의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1930년대 등장한 미군 최초의 81㎜ M-1 박격포와 현재 쓰이는 M-252 박격포는 포판과 포다리로 포신을 고정하고 포탄을 포구에 집어넣는 구조는 같다. 포신이 길어지면서 사거리가 늘어나고 더 가벼워졌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다.

◆120㎜ 박격포 뒤늦게 도입한 한국
오랜 기간 4.2인치 박격포를 써오던 우리나라도 120㎜ 자주박격포를 새로 개발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7일 기존 박격포보다 사거리와 화력이 늘어난 120㎜ 자주박격포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2014년 3월부터 413억원을 들여 개발된 120㎜ 자주박격포와 사격지휘차량은 시험평가 결과 군의 요구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120㎜ 자주박격포는 기존 4.2인치 박격포보다 사거리가 최대 2.3배, 화력이 1.9배 증가했다. 차량을 회전하지 않아도 박격포 자체가 360도 회전이 가능해 전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자동화 사격지휘체계를 갖춰 다른 무기와 연동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유사시 개별 포마다 구축된 독자적인 지휘 시스템으로 화력지원을 할 수 있다. 포판을 고정하기 위해 땅을 파고 수동으로 포를 설치해 무전기로 표적정보를 받아 포탄을 발사하는 기존 4.2인치 박격포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포격이 가능하다.
기존 박격포 운용인력도 줄어들어(중대 기준 32명→24명) 미래 군 구조개편에 따른 부대 인력 감소에도 대응이 가능하다. 국산화율이 100%에 달해 개발에 참여한 4개 방산업체와 100여개 중소협력업체 등을 비롯한 방산업계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방사청은 밝혔다.

새로 개발된 120㎜ 자주박격포는 성능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비해서는 뒤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2인치 박격포를 사용하던 미군은 보다 위력이 강한 120㎜ 자주박격포를 도입해 운용중이며,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전면전보다는 대테러전이나 국지전의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보병부대가 무장단체의 기습을 받았을 때, 즉각적인 화력지원을 받아야 할 상황이 적지 않다. 시가지에 구축된 적 진지를 단번에 파괴해야 할 상황에서도 81㎜ 박격포보다는 120㎜ 자주박격포가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우리 군도 120㎜ 자주박격포 개발로 서구권 군대와 동일한 수준의 박격포 전력을 갖추게 됐다. 여기에 105㎜ 곡사포를 트럭에 탑재해 자주화한 K-105HT도 전력화를 눈앞에 두고 있어 우리 군의 연대, 대대급 보병부대의 화력은 기존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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