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윤희(31·가명)씨는 새로 출시된 이모티콘을 둘러보면서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티콘 캐릭터는 ‘오버액션토끼’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김씨는 무표정한 토끼 캐릭터가 발랄한 움직임으로 상황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최근까지 10여개가 넘는 오버액션토끼 이모티콘 시리즈 중 몇 개를 제외하고는 망설임 없이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심지어 오버액션토끼가 새겨진 폰케이스, 수면인형, 휴대전화케이스, 기업과 협업해 만든 한정판 제품까지 구매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다.
김씨는 “오버액션토끼 이모티콘에는 하트를 많이 사용하는 등 애교 섞인 동작들이 많이 들어 있다”며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보여줄 수 있어 남자친구나 지인 등 가까운 사람들과 메신저로 대화할 때는 늘 사용하는 편”이라고 했다.

카카오톡,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대화를 보조하는 수단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모티콘’이란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이모션’(emotion)과 유사기호를 가리키는 단어 ‘아이콘’(icon)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감정을 표시하는 기호를 뜻한다.
모바일 메신저의 대중화로 이모티콘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캐릭터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성장가도 달리는 이모티콘 시장
2011년 말 카카오톡에서 처음 선보인 카카오 이모티콘은 2012년 11월 ‘카카오 프렌즈’라는 7개의 캐릭터(무지, 콘, 어피치, 프로도, 튜브 등)를 출시하면서 이모티콘 시장 확산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의 카카오 이모티콘 스토어 누적 구매자는 2012년 280만명에서 지난해 2000만명을 돌파하며 6년 만에 8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2012년 월평균 4억건이었던 이모티콘 발송량도 현재는 월 22억건에 달할 정도로 이모티콘 사용도 보편화됐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은 2014년 5월 이용자가 직접 제작한 스티커를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 ‘라인크리에이터스 마켓’ 서비스를 실시한 이래 12억3000만엔(약 133억1290만원)이었던 스티커 누적 판매액이 2019년에는 690억엔(7468억2150만원)으로 60배 가까이 급증했다.
인기 있는 이모티콘 캐릭터들은 인형이나 공책, 볼펜, 휴대전화 케이스 등 각종 굿즈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등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카카오는 이디야, 더페이스샵, 배틀그라운드, 반스 등과 라인프렌즈는 뱅앤올룹슨과 록시땅, 컨버스, 라미 등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감정표현 ‘효자손’ 이모티콘…10∼20대는 ‘유행에 민감’, 30∼40대는 ‘특정 캐릭터에 충성’
KT경영경제연구소와 시장분석기관 DMC 미디어가 공동으로 발표한 ‘2019 모바일 메신저 앱 이용 행태’를 보면 모바일 메신저 이용자의 절반에 가까운 47.2%가 ‘평소 자주 또는 매우 빈번히’ 이모티콘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10대부터 노년층까지 일상 속에서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주요 이유는 이모티콘이 모바일 메신저 대화창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사회적 의사소통에는 말과 글뿐만 아니라 표정, 목소리 톤 등 비언어적인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며 “이모티콘이 등장하면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메신저가 갖고 있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부족’이라는 한계점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말로 길게 표현해야 하는 걸 하나의 이미지나 그래픽에 담아주니까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류나 화장품, 소품 등을 구매할 때 신상을 구입하는 것처럼 ‘남과는 다른 새로운 제품을 갖고 있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 이모티콘을 주기적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대학생 장윤정(24)씨는 “새로 나온 이모티콘을 구매해서 채팅창에 쓸 때 주는 신선함과 쾌감이 있다”며 “옷이나 화장품과 달리 3000원 안팎으로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일컫는 말)”이라고 말했다. 김준수 한남대학교 교수(멀티미디어학)는 “다소 과장된 리액션과 재미있는 움직임을 통해 한 번만 봐도 머릿속에 쉽게 기억될 수 있는 인지성과 이미지 차별성이 이모티콘을 구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연령대별로 선호하는 이모티콘의 유형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날 현재 카카오 이모티콘 중 10∼20대 인기순위에 10위권 안에 포함된 작품은 ‘그럴싸하게 귀여운 아싸토끼’, ‘업티콘’, ‘동그리는 까불까불해’ 등이다. 이들은 하얀 바탕 위에 검은 펜으로 대충 그린 듯한 단순한 그림체에 “콜”, “모해”, “싫어”, “개쩐다” 등 허물없는 사이에 쓸 법한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40대의 경우에는 특정 캐릭터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색채가 화려하거나 그림체가 섬세한 통상적인 ‘웰메이드’ 방식의 이모티콘이 강세다. 딸이나 손녀를 닮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닮은 캐릭터 ‘뽀야’, ‘쥐방울’ 시리즈와 우리 시대 아주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나애미’, ‘오여사’, ‘엄마덕후’ 시리즈, 쫄쫄이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얼굴표정을 한 ‘오니기리’ 시리즈가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다면 이모티콘을 만들 수 있어”
이모티콘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이모티콘 작가로 성공하면 대박이 난다’는 이야기도 더 이상 놀랍지 않게 됐다. 카카오에서 누적매출 10억원 이상을 달성한 이모티콘은 지난해 50개가 넘고, 라인에서는 연매출 10억원 이상을 달성한 크리에이터가 26명이나 탄생했다. 이렇다 보니 주부, 학생, 직장인 등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이모티콘 작가에 도전하고 있다. 서점에서는 이모티콘 제작 과정을 담은 책들이 여러 권 출시됐고 관련 학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신촌에서 이모티콘을 가르치는 한 강사는 “그래픽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해도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단순 인기작품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모티콘 판매로 얻은 이익 중 약 30%는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 수수료로 지불되고 나머지 70%를 일정 비율로 작가와 업체가 분배한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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