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 골든벨’은) 퀴즈 프로그램이지만, 단순히 지식 경쟁을 하기보다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친구(학생)들이 (촬영하는 동안) 누리면 좋겠습니다. 시청자들도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면서 함께 즐기시길 바랍니다.”
지난 14일 강원 속초에서 만난 강성규, 강서은 아나운서는 자신들이 진행을 맡고 있는 KBS1 ‘도전! 골든벨’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다음달 21일 방송 예정인 958회 속초여자고등학교편 촬영차 속초를 찾았다.
‘도전! 골든벨’은 100명의 고등학생이 50개의 문제에 도전하는 퀴즈 프로그램이다. 퀴즈 대결에서 일등을 뽑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청소년들의 재치와 생각, 가치관과 문화를 담아내고 있다.

“녹화를 할 때마다 어른의 상식과 지식이 아이들의 눈높이와 차이나 많이 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일부러 맞히라고 내는 문제를 학생들이 다 틀리는가 하면, 저희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학생들이 척척 맞히기도 합니다. 최근 황영조 선수에 대한 문제를 냈는데 대부분이 틀렸어요. 하지만 이봉주 선수는 알더라고요. 세대가 달라서 그런 거 같아요. 하하.”(강성규)
2000년 3월 31일에 첫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진행은 김홍선·손미나 아나운서가 맡았다. 이후 윤인구, 김홍성, 김보민, 오정연, 박은영 등 쟁쟁한 아나운서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강성규 아나운서는 남자 아나운서로 8번째, 강서은 아나운서는 여자 아나운서로 14번째다.

‘도전! 골든벨’은 통상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먼저 촬영을 요청하고, 제작진은 내부 회의를 거쳐 이들 가운데 한 학교를 선정한다. 하지만 이날은 평소와 달랐다. 제작진이 먼저 속초여고를 결정한 뒤, 학교 측에 촬영 가능 여부를 물었다.
“지난 4월 강원지역 대형 산불이 있었던 터라 현장을 찾아가 학생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가능하면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도전! 골든벨’의 장학금과 해외 연수 기회가 (학생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강성규)
강서은 아나운서는 “오기 전에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학생들의) 표정이 밝고 열정 또한 대단했다”며 “오히려 우리들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촬영장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촬영이 시작된 오전 8시부터 설온중학교 체육관은 속초여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내지르는 함성과 열기로 가득 찼다.


100명의 도전자는 대부분 웃는 얼굴로 문제 풀이에 응했다. 양옆에 설치된 계단식 객석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응원이 펼쳐졌다. ‘이겼닭 치킨 먹자’ ‘수빈아 뭐 하니 일어나 종 울려’ 등이 적힌 피켓은 물론이고, 골든벨 모양의 가면을 쓴 학생들도 있었다.
자칭 ‘골든벨친구들’(Goldenbell Friends·GF)이라는 공서영·박지혜·송지은·이나윤·이효림양은 친구들을 위해 이틀 동안 방과 후 교실에 남아서 가면을 제작했다.
“같은 반(2학년6반) 김하은, 박다연, 박혜리, 최서희가 도전자로 나가거든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골든벨 가면을 만들었어요. ‘도전! 골든벨’ 상징이 종이고, 특이하게 응원을 하면 카메라에 더 잘 잡힐 테니…, 무엇보다 친구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어요.”(골든벨친구들)

도전자들도 문제 풀이에만 집중하진 않았다. 오전 11시쯤 도전 학생수가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지만, 탈락한 이들의 얼굴에서는 그다지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쌓고 있다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얼마 전 일대가 대규모 화마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는 아픔조차 잠시나마 체육관 한쪽에 개어놓은 듯했다.
촬영장에서 만난 한 학생은 “산불로 집이 전소됐지만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힘이 난다”며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촬영해서 즐겁다”고 웃어보였다.
강성규, 강서은 아나운서는 ‘도전! 골든벨’에서 이러한 웃음이 계속 이어지길 희망했다.
“‘도전! 골든벨’이 19년 동안 방송을 한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청소년 퀴즈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겠습니다.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을 출연시켜 많이 알거나 나홀로 똑똑함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이들의 ‘순수함’을 보여주고, 시청자들에게는 학창시절로 추억여행을 다녀오는 기회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속초=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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