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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3선개헌’이 남긴 진짜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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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14 23:17:01 수정 : 2019-06-14 23: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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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타계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969년 당시 30대 후반의 팔팔한 재선의원이었다. 여당인 공화당 소속임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 추진을 반대했다. 이 전 의장 회고록 ‘정치는 가슴으로’는 그와 박 대통령이 나눈 대화를 이렇게 전한다.

김태훈 특별기획취재팀장

“각하께서 후계자에게 4년간 맡긴 뒤 4년 후에 다시 정권을 잡으시면 되잖습니까?”(이만섭)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자기 조직을 짜고 군대까지 장악할 텐데 4년 후 내놓을 사람이 있겠어.”(박정희)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관계가 떠올라 쓴웃음이 난다. 박 대통령의 끈질긴 고집에 이 전 의장도 개헌 찬성으로 돌아서고 만다.

올해로 꼭 50주년이 된 3선개헌은 대통령의 3연임 금지 규정을 없앤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3선개헌 하면 박정희 정권의 독재하고만 결부짓는 이가 많다.

그런데 개정된 조항이 하나 더 있다. 직전의 1963년 헌법은 ‘국회의원은 국무총리, 장관 등을 겸할 수 없다’는 명문 규정을 뒀다. 3선개헌 때 이 ‘족쇄’를 풀어 의원의 총리·장관 겸임을 허가했다.

여당 의원조차 개헌 반대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의원의 총리·장관 겸직을 허용한 속셈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의원들한테 일종의 ‘당근’을 던져준 것이다. “권력 연장을 위한 입법부 무마 수단”(서경교 한국외대 교수)이란 해석은 정확해 보인다.

대통령제의 본질은 입법·행정·사법 3권분립이다. 의원의 총리·장관 겸임은 의회와 정부가 사실상 한 몸인 의원내각제에나 어울리는 제도다. 오죽하면 3선개헌안 국회 통과의 총대를 멘 백남억 당시 공화당 의장마저 “대통령책임제 아래에선 가부 간의 시비가 있을 것”이라고 위헌 소지를 인정했을까. 뻔히 알면서도 “겸직이 현실적 요청”이란 해괴한 이유를 들어 표결을 밀어붙였다.

이후 반세기 동안 헌법과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으나 의원의 총리·장관 겸임은 ‘요지부동’이다. 의원이 총리나 장관을 맡으면 정부를 감시해야 할 국회 칼날이 무뎌질 것은 불보듯 뻔한 노릇이다. 그래서일까, 의원 출신 총리·장관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에서 한 번도 낙마한 적 없다는 ‘의원불패’ 신화까지 생겼다.

문재인정부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필두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이 내각에 포진해 있다. 전체 장관 18명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6명 중 4명은 내년 총선 출마의 뜻을 굳힌 채 장관직을 언제 내던질지 고심 중이라고 한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의 임기 연장과 의원들의 특권 확대를 서로 맞바꾼 ‘뒷거래’는 적폐라면 적폐일 것이다. 그런데 “적폐청산”을 무슨 주문처럼 외는 현 정권이 이 사안에 관해선 입을 굳게 다문다. 지난해 야심차게 선보인 개헌안도 의원의 총리·장관 겸직 문제는 쏙 빼 버렸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측 항의에 문재인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행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법원에 관해선 정부가 털끝 하나 못 건드린다는 식이다. 그토록 권력분립을 애지중지하는 이 정부가 국회를 대하는 태도는 왜 180도 다른지 못내 궁금할 뿐이다.

 

김태훈 특별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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