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2일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마련한 것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고, 고용 등 부가가치 창출도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바이오헬스란 생명공학, 의·약학 지식에 기초해 인체에 사용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의약품, 의료기기 등 제조업과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등 의료·건강관리 서비스업을 포함한다.
2030년까지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률은 4%로 전망되는데, 이는 조선(2.9%), 자동차(1.5%) 등 산업보다 크다. 생산 10억원 증가 시 고용 효과도 바이오헬스는 16.7명으로 전 산업 평균 8명을 웃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제약사 애비브사가 만든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휴미라의 연간 매출액은 20조원에 이를 정도다.

한국의 잠재력과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정보통신기술)를 보유하고 있고, 의료 및 병원시스템, 의·약학 인재도 풍부하다. 한국의 바이오헬스 산업 기술력은 세계 최고 기술국으로 평가되는 미국의 78%까지 따라왔다. 한국은 전 세계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2위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해외 글로벌 제약사들과 비교해 자금력 등이 부족해 대표 신약을 개발할 여건이 녹록지 않다. 또 전통적 산업 관점의 규제가 많아 신산업에 맞지 않고, 심사 기간이 길어 시장 변화에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기술 개발-인허가-생산-시장 출시까지 전 단계에 걸쳐 혁신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술 개발은 ‘빅데이터’가 중심이 된다.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에는 향후 10년에 걸쳐 개인정보 공유에 동의한 암·희귀난치질환자 등 환자 40만명과 환자가족을 포함한 건강인 60만명의 유전체 정보, 의료기록, 건강정보가 담긴다. 단일 병원 단위의 빅데이터 플랫폼도 만들어진다. 국내 대형병원이 보유한 임상현장 데이터는 500만∼600만건에 달한다. 이는 핀란드 인구(556만명)와 맞먹는 규모다. 이들 정보는 희귀난치질환 원인 규명이나 신약·신의료기술 개발, 개인 맞춤형 신약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은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을 위한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며 “성장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는 2025년 4조원까지 늘어나는데, 이는 기초연구·응용연구를 포함해 표적항암제나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재생의료·바이오의약품 R&D를 중점 지원해 세계 시장 선도를 이끌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다. 제약·바이오 기업 연구개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신성장동력·원천기술 R&D 세액공제 대상에 바이오베터(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효능을 개량한 약) 임상시험비를 추가하고, 이월 기간은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평균 18개월이 소요되던 신약 허가심사 기간은 12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이미 허가받은 임상시험 계획을 일부 수정할 때에는 변경승인을 받지 않고 보고만 해도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와 비교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의약품 허가·심사 인력이 적어 의약품 심사 기간이 장기화하고 인허가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 350명 수준인 의약품 허가·심사 인력은 3년 안에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제약·의료기기 등 주요 분야별로 선진국 수준에 맞는 규제개선 로드맵도 연내 마련한다. 심전도를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 자동 복막 투석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 신기술의 의료현장 사용 촉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혁신 의료기기가 개발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다만 규제 완화 등으로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안전관리를 강화한다. 국가 차원의 재생의료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연구승인 전문성을 강화하고, 유전학적 계통검사(STR)와 첨단바이오의약품 투여 환자 대상 장기간 추적관리도 의무화된다.
권덕철 복지부 차관은 “바이오헬스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물론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 등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산업”이라며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을 위한 여러 생태계가 조성되면 세계 수준의 기업 유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文 “제약·의료기기 500억불 수출 목표”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지역경제 활력을 위한 전국 경제투어 9번째로 충북 청주를 찾아 시스템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에 이어 바이오헬스를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충북 청주시 오송 CV센터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 선포식’ 연설에서 “우리 정부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3대 신산업으로 선정했고, 벤처 창업과 투자가 최근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2030년까지 제약·의료기기 세계시장 점유율 6%, 500억불 수출, 5대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헬스 산업의 전망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관심은 ‘오래 사는 것’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으로 달라지고 있다”며 “바이오헬스 산업이 계속해서 성장·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은 2016년 기준으로 세계시장 규모가 1조8000억달러 수준으로 커졌고, 매년 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향후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가 높은 분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제약과 생명공학 산업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시대도 머지않았다”며 “자금이 없어서 기술 개발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 R&D(연구개발)를 2025년까지 연간 4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스케일업 전용 펀드를 통해 향후 5년간 2조원 이상을 바이오헬스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관련 세제 혜택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연구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제약·바이오 분야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혁신적 신약개발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먼저 “5대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춘 우리 의료기관들이 미래의료기술 연구와 기술 사업화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도록 병원을 생태계 혁신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손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의식한 듯 “국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나아가 생명윤리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며 “심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심사관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 제품에 대한 인허가 기간을 더욱 단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혈청을 사용하지 않고 세포 증식을 빠르게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업체의 부스를 찾아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성공 예감, 대박 예감이 든다”고 격려했다. 이날 비전 선포식 행사장의 문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앉았다. 지난 16일 문 대통령이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의지를 공개하자, 서 회장은 같은 날 바이오·의약품 산업에 40조원을 투자해 1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이날 행사에 동행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노 실장은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의 지역경제 투어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청주가 노 실장이 세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역구(청주 흥덕을)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노 실장은 바이오헬스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다는 점에서 동행했다”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충북 방문은 지난해 10월 청주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준공식 이후 7개월 만이다.
이진경·김달중 기자 l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