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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붙여달라”… 경찰, 무분별 구급신고에 소방 ‘부글부글’ [뉴스+]

입력 : 2019-05-21 19:49:58 수정 : 2019-05-21 21: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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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응급환자 이송 갈등 확산 / 주취자 신고에 출동해보면 ‘멀쩡’ / “99% 택시타고 집에 갈 수 있어” / 손톱 긁혔다고 경관이 치료 요청도 / 경찰 “응급상황 판단 전문성 필요 / 만약의 경우 대비 조치로 이해를” / 전문가 “사례별 매뉴얼 만들어야”
119구급대원들이 부상자 이송훈련을 하고 있다.

“바로 앞이 집이라 그냥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이달 초 한 서울 시내 한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자고 있던 시민이 자신을 깨우는 구급대원 A씨의 손길에 놀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잠깐 “누가 신고했냐”고 묻다 곧장 혼자 걸어서 집에 들어갔다. 구급대는 경찰의 주취자 신고를 받아 출동한 터였는데 정작 현장엔 경찰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A씨는 소방 내부망에 올린 ‘경찰이 신고하는 주취자 출동 무조건 다 출동시키는 것 지양해주세요’란 글을 통해 “주취자가 난동 피운 것도 아니고 다친 것도 아니었다”며 “적어도 현장에 경찰이 와 있고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119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신고하라고 얘기 정돈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게 하나 하나 다 비응급출동”이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소방 내부에서 이런 경찰의 부문별한 구급신고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소방본부가 이송거절을 강화하며 비응급환자 이송 문제가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경찰만 여전히 비응급 신고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일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한 구급대원은 ‘경찰 구급대 이용 심각합니다’란 게시물을 통해 “새벽에 경찰서나 지구대에서 구급대 요청하는 경우,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99%가 택시타고 본인이 걸어갈 수 있고 의식도 명료한 찰과상·타박상 환자”라며 “언제는 경찰이 주취자 손톱에 긁혔다고 본인이 신고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구급대원은 ‘경찰이 택시 부르듯 119 구급대를 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구급대원은 “파출소에서 신고가 들어와 갔는데 조사해야 된다고 상처소독만 해주고 가라길래 소독하고 ‘조사 다하면 알아서 병원 가라고 해주세요’라고까지 하고 나왔다”고 했다. 다른 구급대원들도 “경찰이 불러서 가보면 ‘파스 뿌려달라’, ‘밴드 붙여달라’ 등 간단한 조치만 요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구급대’가 아니라 ‘구급상자’ 취급한다” 등 경찰의 신고 행태에 불만을 내보였다.

 

소방 측은 긴급 상황 대응력 제고를 위해 비응급환자 이송거절 강화, 일반 시민 대상 비응급신고 자제 캠페인 등 비응급환자 이송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조치를 해오는 중이다. 이에 따라 2014년 6만6160명이던 실제 비응급환자 이송 인원이 지난해 3만2125명까지 줄었다. 비응급환자는 단순 타박상, 치통, 감기 환자, 주취자 등이다. 

경찰 측은 응급상황에 대한 판단은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급대를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주취자의 경우 정말 단순 주취자인지, 아님 치료가 필요한 환자인지는 전문성을 갖춘 의료진도 쉬이 평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란 것이다. 실제 지난 1월 인천에서 술에 취한 잠든 60대 남성이 병원에 이송됐다 의료진 지시로 병원 밖 공원으로 옮겨져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위급한 상황이라도 겉으로 티가 안나 자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 차 때문에 경찰과 소방 양측이 일선 근무자의 현장 대응 중 기준으로 삼을 만한 구체적 지침을 마련할 필요 있단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9월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은 간담회를 열고 112‧119 신고현장 협력 내실화 방안을 협의했지만 현재 양측 공조는 각 지방경찰청과 지방소방본부, 경찰서와 소방서 간 분기별로 현장간담회를 실시하도록 권장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세진 우송대 교수(소방방재학)는 “경찰 측에서 자체 조치 가능한 사안에 대해 구급 신고가 남발된다면 그건 분명한 소방력 손실이고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일반 시민의 피해로 돌아갈 수 있는 문제”라며 “현장 상황이 구분하기 어려울수록, 사례별로 매뉴얼을 만들어서 경찰과 소방 간 효율적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환·유지혜 기자 keep@segy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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