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즈음 수원에 괴물 센터가 등장했다고 농구계가 술렁거렸다. 중학생 때 이미 신장 2m를 넘겼고 계속 키가 자라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하승진(34·사진)이었다. 그는 삼일상고를 거치며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속에 연세대에 진학했다. 키는 이미 221㎝까지 자라 국내 최장신 센터라는 별칭을 얻었다. 2003년 고교생으로는 사상 두 번째로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리고 연세대 1학년을 마친 2004년 하승진은 한국 농구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바로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 2라운드 17번(전체 46순위)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돼 한국인 최초의 NBA 선수가 된 것이다. NBA 두 시즌 동안 46경기에 나서 평균 6.9분을 뛰며 1.5득점 1.5리바운드를 기록한 하승진은 2005∼2006시즌 최종전이었던 LA 레이커스전에서 13득점 5리바운드를 올리며 자신의 NBA 한 경기 최고 기록을 쓰기도 했다. 이후 그는 2007년 10월 국내 복귀를 선언하고 2008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전주 KCC에 지명돼 사회복무요원 복무 시기를 뺀 9시즌을 한 팀에서만 뛰었다.
하지만 2018∼2019시즌을 마친 뒤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된 하승진은 14일 KCC 구단과의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SNS 글에서 “팀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시장으로 나가보라고 힘들게 얘기를 꺼내주셨다”면서 “보상선수도 걸려있고, 금액적 보상도 해줘야 하는 나를 불러주는 팀이 있을까? 내가 KCC 말고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잘할 수 있을까? 말년에 이 팀 저 팀 떠돌다 더 초라해지는 것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해보니 전부 다 힘들 것 같았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신인 때와 3년 차 때 이후로는 우승과 거리가 멀어 마음의 짐이 꽤 무거웠다”면서 “팬 여러분과 구단 관계자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KCC에서 몸과 마음, 열정을 불태웠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KCC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우승에 도전하기 바란다”는 응원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KCC 구단 관계자는 “하승진이 은퇴하겠다고 먼저 의사를 밝혀 일단 FA 시장에 나가보자고 만류했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하승진은 정규리그 347경기에 출전해 11.6득점, 8.6리바운드, 1.1블록슛의 기록과 2009년 신인상, 2011년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등의 수상 전력을 남기고 코트와 이별하게 됐다.
송용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