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는 효과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벼랑 끝에 서 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물에 빠졌을 때 지푸라기 하나를 붙잡고 나올 수는 없다. 최소한 지푸라기 몇 가닥을 꼬아서 만든 새끼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위기를 극복할 지혜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비록 하찮고 작은 것이라도 힘을 모으면 위기탈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11일 충남 당진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줄다리기 중의 하나인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가 4일간 열렸다. 줄다리기를 위해 만들어지는 거대한 줄은 지푸라기에서 시작된다. 기지시 줄다리기에 사용될 거대한 암줄과 수줄을 만드는 데 볏짚 4만 단이 들었다고 한다. 길이가 200m이고 무게는 40t에 달한다. 지푸라기 한 줌으로 소줄을 만들고 그 작은 줄 수십 가닥으로 중줄을 만들며 중줄을 꼬아서 다시 큰 줄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거대한 줄이 태어난다. 또한 그 줄에는 아주 심오한 지혜와 가르침이 들어 있다.

줄다리기에는 동네 주민뿐 아니라 전국의 장터를 떠돌며 장사를 하던 상인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했다고 한다.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액초복(除厄招福)의 힘을 모으기 위해 모두가 ‘으영차, 으영차’를 외쳤던 것이다. 그야말로 대동(大同)의 한마당이었다. 단결을 위해서 집집마다 귀한 볏짚을 내놓고 동아줄을 꼬는 수고를 마다하지도 않았다.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 줄을 당기고 승자도 가리기는 했지만 그 승리의 의미는 예사롭지 않았다. 윗마을이 이기면 나라가 평안하고 아랫마을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방식으로 누가 이기든 모두가 즐겁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잔치마당으로 만든 것이다. 요즘처럼 1등만 알아주고 누군가를 패자로 만들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문화와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인 4일에는 강원도 고성과 속초지역에서 사상 초유의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양간지풍’이라 불리는 거센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 불티는 속초 시내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산림청과 소방청을 비롯한 산불대응기관은 물론 군과 경찰,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의용소방대와 같은 민간 인력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밤을 새워 힘을 집결시켰다.
지역은 강원도였지만 전국이 하나 되는 국가총력대응이 된 것이다. 한 가닥 한 가닥 지푸라기를 모아 큰 동아줄을 만들고 한마음으로 당기면서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줄다리기 정신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이러한 대동단결의 모습에 감동했는지 날이 밝으면서 바람은 잦아들었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헬기와 인력이 집중 투입되면서 산불 발생 13시간여 만에 완전히 진화할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지푸라기 같은 약한 존재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힘을 모으면 어떠한 재앙도 막아낼 수 있다는 지혜를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줄다리기라는 멋진 문화를 만들었다. 재난 대응은 모아야 힘이 된다. 재난대응의 성패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모든 역량을 지체 없이 동원하여 결집시킬 시스템을 얼마나 견고하게 갖추었느냐에 달려 있다. 지푸라기와 동아줄이 그것을 알려 주고 있다.
정문호 소방청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