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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처럼 착용 ‘AR글래스’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다 [창의·혁신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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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17 03:00:00 수정 : 2019-04-16 21: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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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차 벤처 ‘난제’ 풀다 / 기존 AR장비 헬멧 같은 모양에 무거워 /시야각 좁고 초점 안맞아 어지럼증 유발 / 레티널, 사진기 이용 ‘핀홀’ 원리로 돌파구 / 바늘구멍으로 증강현실 구현 / 구멍 통과한 일부 빛이 또렷한 상 맺듯 / 안경렌즈 삽입 핀미러로 AR 기술 혁신 / 작은 기기와 안경 구성… 휴대성 뛰어나 / 글로벌 업체들 ‘러브콜’ / 인건비 절감?효율성 증대 시장성 입증 / 세계적 기업과 시제품 상용화 협의 중 / 미래성장성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 기대

술집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을 포착하면 허공에 키와 위험도 등의 정보가 나타나고, 이를 통해 찾고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 최종 결과가 중앙에 표시된다. 야외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면 별의 배치를 파악해 날짜를 계산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로봇의 시야를 통해 구현되는 이 같은 장면은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을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허공에서 손동작으로 가상의 이미지를 구동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헬멧에 부착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복잡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아이언맨’도 있지만, 가장 직관적인 AR 관련 사례라면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전투력 스카우터’를 꼽을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TV와 PC 등을 거쳐 현시점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들이 추가되며 AR글래스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상적인 형태라면 단어 뜻대로 안경처럼 간단히 착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와 거리가 멀다. ‘홀로렌즈2(마이크로소프트)’나 ‘매직리프 원(매직리프)’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에 나섰지만 실제 모습은 글래스라기보다는 ‘헬멧’에 가까울 정도로 투박하고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휴대성과 가격 등 여러 과제가 있지만,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어지럽고 시야각이 사람 시야보다 좁은 부분 등이 대표적인 난제로 꼽힌다.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며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무대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 기업이 있다. 설립 4년 차에 직원은 10명 남짓인 토종 스타트업, 바로 ‘레티널(LetinAR)’이다.

◆누구나 아는 핀홀 원리, 그 정체는

레티널이 여러 난제를 한 방에 해결한 비법은 바로 ‘핀홀(pin hole)’의 원리를 이용한 ‘핀미러(pin mirror)’다. 핀홀의 원리는 어렸을 때 누구나 들어본 바늘구멍 사진기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바늘구멍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면 극히 일부의 빛만 구멍을 통과하며 또렷한 상을 볼 수 있다. 멀리 떨어진 글자가 흐릿하게 보일 때 눈을 찡그려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무의식중에 핀홀효과를 이용하는 셈이다.

이러한 핀홀의 원리는 기원전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일찌감치 인류와 인연을 맺었다. 기원전 5세기경 중국의 한 기록에 ‘빛은 반사되고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은 상하가 바뀐 상을 벽에 비춘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핀홀 카메라의 광학적인 기본원리다.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는 핀홀을 이용해 태양의 일식을 관측했다. 아라비아 지역에서도 10세기경 핀홀 이미지를 형성한 실험에 대한 기록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핀홀 카메라의 원리를 주로 일식 관측 등 천문학에 이용했다.

핀홀 원리를 이용해 사진을 만든 최초의 인물은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로, 1856년 출판한 저서에서 핀홀(pin-hole)이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사용했다. 1620년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휴대용 어둠상자(camera obscura)를 발명한 이후에는 핀홀의 원리가 화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도 널리 퍼졌다.

1900년 무렵에는 상업용 핀홀 카메라가 등장하며 북미와 유럽, 일본 등에서 유행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렌즈 방식의 카메라가 대량생산되는 등의 변화에 따라 핀홀의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지만, 학술적인 목적과 예술적인 목적으로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40년대 핵물리학 연구에서 고에너지 X선과 감마선을 촬영하기 위해 핀홀 카메라가 활용됐고, 1950∼60년대에는 우주선에 핀홀 카메라를 배치해 태양의 형태를 X선과 감마선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19에 마련된 레티널의 전시관 모습. 레티널 제공

◆‘바늘구멍’의 원리, 거울에 적용해 난제 해결

그렇다면 레티널이 개발한 AR글래스에서 핀홀의 원리는 어떻게 구현될까.

우선 안경 상단에 부착된 초소형 디스플레이에서 빛을 쏘면 이 빛이 안경 렌즈에 삽입된 핀미러에 반사돼 망막에 도달한다. 핀미러는 지름이 1㎜보다 작기 때문에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수준이고 렌즈가 크게 두꺼워질 필요도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눈에서 25㎝보다 가까이 물체가 접근하면 초점을 맞추기 힘들다. 노안이 찾아오면 이 거리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팔 길이만큼 물체를 떨어뜨린 뒤 확인하기도 한다. 안경에 먼지가 붙어 있어도 사람이 이를 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홀로렌즈나 매직리프 등 기존의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개발에 있어 핵심은 이 거리를 안경렌즈 정도로 당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빛을 여러 차례 압축하고 RGB(빨간색·녹색·파란색)로 분할했다가 합치기도 하기 때문에 가상 물체의 초점이 잘 맞지 않기도 하고 시야를 방해해 어지러움을 유발하게 된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빛을 압축하고 합치는 등의 복잡한 프로세스를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기기를 담아야 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배터리도 커져야 한다. 반면 레티널의 AR글래스는 손톱보다 작은 기기와 안경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휴대성에서 가히 압도적이다.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의 빛을 관리하면 되기 때문에 배터리가 클 필요도 없다. 기기에서 처음 쏜 빛 중 망막에 도달하는 비율인 광효율은 약 10%에 달한다. 기존 제품의 광효율은 1% 미만 혹은 3%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핀홀을 통하게 되면 눈으로부터 어느 거리에 초점을 맞추든 가상 물체의 초점이 흩어지지 않는다. 핀홀 효과의 특성상 어지러움이 발생할 소지도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핀홀 하나가 커버하는 시야각은 12∼15도 정도다. 기존의 다른 AR글래스나 HMD가 시야각을 늘리기 위해 별도의 기술과 기기를 더해야 했다면, 레티널의 AR글래스는 렌즈에 삽입되는 핀홀을 여러 개로 늘리기만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핀미러의 각도와 핀홀의 간격, 모양, 개수 등이 시야각이나 가상물체의 심도 등에 영향을 준다. 레티널은 한쪽당 80도씩 도합 120도의 시야각을 구현하는 제품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놓고 각축 치열한 글로벌

AR 기술 및 AR글래스가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은 것은 최근이 아니다. 기업들이 신제품에 나서기 위해서는 크게 기술적인 구현 문제와 시장성이 해결돼야 한다. AR에 대한 기술적 진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8월 미국의 방산업체이자 우주개발기업인 록히드마틴이 “엔지니어들이 우주선 제조공정을 수행하고 배우는 데 AR 헤드셋과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다”고 발표하며 기름을 부었다. AR를 통해 인건비 절감 및 공정 효율 증대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시장성까지 입증된 것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공룡들은 저마다 AR글래스 및 HMD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구글은 2014년 ‘구글글래스 익스플로러 에디션’을 출시했지만 배터리 성능 문제와 내부 사정이 복잡하게 얽히며 이듬해 생산과 판매를 중단했다. 올해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 선보인 홀로렌즈2는 어지러움 현상과 시야각 개선 등 성능향상으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장비가 여전히 무거운 편이고 가격이 3500달러에 달하는 만큼 일부 B2B(기업 간 거래) 용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매직리프 원은 HMD 크기를 다소 줄였지만 배터리를 유선으로 연결해 별도로 착용해야 한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쯤 AR글래스 혹은 HMD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AR에 대해 수차례 강조해온 데다 관련 전문가 채용은 물론 관련 기업 인수 소식까지 이어진 바 있다. ‘아이폰X 폴드’의 출시가 AR글래스 탓에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들 또한 AR글래스 및 HMD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애플이 AR글래스를 출시할 경우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얼마나 합류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의 AR과 VR(가상현실) 헤드셋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54.1% 늘어난 890만대일 것으로 추산된다. 또 2019∼2023년 CAGR(연평균 복합 성장률·compound annual growth rate)은 66.7%로 2023년 출하량이 686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레티널의 AR글래스는 아직 시제품 상태로 상용화를 위해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과 글로벌 기업 등 여러 기업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관련 콘텐츠 또한 아직 개발되지 않고 정해진 데모를 보여주는 정도이지만, 여러 세계 무대에서 기술이 완성 단계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만큼 레티널의 파트너가 되기 위한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CES에서는 AR를 통한 세계 최초 8K 해상도를 구현해 또다시 탄성을 자아냈다.

하정훈 레티널 최고기술경영자(CTO)는 “기존의 AR기술이 수십년에 걸쳐 개선된 반면 레티널은 3년여 만에 기술혁신을 이뤘다”며 “앞으로도 성장 잠재력이 큰 핀미러 기술을 잘 발전시켜 AR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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