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번 합의에서 정작 시민들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오전 7~9시, 오후 6~8시로 시간을 제한한 것은 탄력적 근무제로 근무하는 소비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은 제외돼 바쁜 시간인 평일 출퇴근 시간에 이용객들이 얼마나 카풀을 이용할지 미지수입니다.
초고령 운전자의 개인 택시를 줄이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논의됐으나, 초고령 관련 명확한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택시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승차 거부와 불친절 서비스에 대해 택시업계는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부분 역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치겠다고 정해진 부분이 없어 시민들의 택시에 대한 불신이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택시기사 월급제에 대해서도 택시업계 내부에서 이견이 많아 개인, 법인, 노조 등의 합의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그간 적지 않은 갈등을 이어왔던 카풀업계와 택시업계간 큰 틀에서는 합의를 이뤘지만, 정작 택시와 카풀을 이용하는 대다수 시민들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합의된 게 없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서울 택시기사들이 이번 합의안 거부 의사를 밝혀 또다른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카풀 문제를 놓고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지난 7일 극적인 합의를 이룬 가운데, 택시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틱한' 합의 과정을 지켜본 일반 시민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승객들은 카풀 허용도 좋지만, 택시 업계 자정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상황입니다.
택시4단체와 카카오모빌리티, 당정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합의는 그동안 '카풀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택시 업계가 모빌리티 업계 양보에 호응해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합의문은 대부분 국토교통부가 지난해부터 택시업계에 제안한 '택시산업 발전방안' 초안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날 합의의 핵심은 모빌리티 업계가 승용차 기반으로 시작하려던 카풀 서비스를 택시에 적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택시·플랫폼 업계는 이날 합의에 따라 올해 상반기 중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를 출시하겠다고 합의문에 못 박았는데요. 플랫폼 택시는 현재 택시에 우버처럼 플랫폼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지난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택시의 우버화'를 택시업계에 제안하며 소개한 바 있는데요.
김 장관은 지난달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현해 이 구상을 언급하며 "단거리 콜비 도입 등 생각해놓은 게 굉장히 많다"며 "아이를 학교에, 어르신을 병원에 태우고 가는 서비스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와 결합한다면 택시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수입도 올라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택시처럼 플랫폼 기술을 택시에 적용할 경우 다양한 부가서비스 시행이 가능해 택시 수입이 증가하고 서비스 수준도 개선될 것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입니다.
플랫폼 업계도 택시에 이같은 선진 기술을 결합하는 것에 비교적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사실상 카풀 서비스 대상이 일반 자가용에서 영업용 택시로 바뀌는 셈인데요. 플랫폼 업계 입장에서는 수수료 등 수익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카오 측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보다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가 가능해지도록 규제를 혁파하는 합의를 이뤘다"며 "향후 이용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번 타협을 시작으로 이용자와 업계 종사자 모두를 위한 새로운 모빌리티 혁신 생태계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승객 편의 '뒷전'…택시·플랫폼 업계 이익만 고려했다는 지적
현행법에서 모호하게 허용하고 있는 카풀은 적용 시간을 오전 7∼9시, 오후 6∼8시로 정해 혼란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는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카풀을 하는데 해당하는 규정일 뿐 모빌리티 업계가 카풀 사업을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 편익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택시·플랫폼 기존 업계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시민은 "그간 택시들이 크고 작은 파업을 벌이면서 정작 중요한 승객들의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이번 합의안에 승차거부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던데, 과연 잘 지켜질지 의문이다. 시민들이 눈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유경제'로 불리던 카풀이 일반 승용차가 아닌 택시에만 적용되는 것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는데요.

당국은 현재 많은 국민이 택시에 불만을 갖는 이유가 출퇴근·심야 시간대 택시를 잡기 어렵고, 일부 기사의 승차거부나 불친절 등 서비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실제 법인택시의 경우 매일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납부하는 사납금제 시행으로 택시 기사들이 하루 12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월 215만원 수준의 수입 밖에 올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인택시 감차 비용 설마 혈세로?
대타협기구는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의 다양한 감차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국토부는 택시산업 발전방안 초안에 시장에서 1억원 안팎에 거래되는 개인택시 면허를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은퇴를 희망하는 고령 택시기사들의 면허 반납을 유도해 택시 과잉공급 문제를 해소하고,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자는 취지로 풀이됩니다.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 감차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택시 기사 나이가 많아 불안했다는 의견과 '개인택시 권리금'으로 불리는 번호판(면허) 거래가격이 급락해 사실상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쪽으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업계 한 전문가는 "택시업계가 카카오 카풀에 반대한 것도 유사 수송업이 생기면서 1억원 안팎에 거래되던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고령 운전자의 개인택시 면허 감차 방안도 이 점을 고려해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개인택시 기사들 "합의안 전면 거부…분신하신 분들 숭고한 정신 짓밟는 행위"
이런 가운데 서울 개인택시 기사들이 이번 합의안을 전면 거부한다고 8일 밝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서울 개인택시 운송사업조합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카풀 일부 허용 합의는 그동안 카풀 자가용 영업행위가 근절되는 날까지 투쟁해달라"며 "분신하신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짓밟는 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조합은 "서울은 카풀 허용 행위로 최대 피해를 보는 지역"이라며 "전국의 모든 택시 단체가 이번 합의에 이의를 달지 않아 홀로 외로운 투쟁이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서울 개인택시 5만 조합원은 합의안을 전면 거부할 수밖에 없다. 총력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합의안은 조합의 동의 없는 졸속 합의로 향후 자가용 유상운송 행위에 빌미를 줄 가능성이 높다"며 "순수한 의미의 카풀을 반대하진 않지만 향후 영리 목적의 불법 자가용 영업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합의문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의 목적은 81조 1항 카풀 단서 조항의 삭제, 단 한 가지"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81조 1항은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을 금지한다고 명시했지만,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 등을 예외로 두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 장기적으로 승차공유 시장에 악재라는 시각도
이번 협의안에 뚜렷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안팎에선 원칙적으로 개인택시 면허를 정부와 지자체가 매입하는 방안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매입대금을 연금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데요.
65세 이상으로 한정하면 개인택시 면허 보유자 16만3000명 가운데 5만6000명이 대상입니다. 택시업계의 주장대로 이 면허 값이 1억원으로 거래될 경우 총 5조6000억원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결국 어떻게 택시 감차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느냐가 택시업계와 카풀 공생의 중요 변수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나서는 방식이라면 국민이 택시면허의 감차 비용을 부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당국은 장기간 협의를 통해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시민들의 반발 등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녹록하지 않을 전망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카카오와 택시업계의 이번 합의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현행법상 카풀은 원래부터 합법적인 서비스였는데 이번 합의에서 특정 시간에만 운행하는 선례를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승차공유 서비스의 미래 시장 규모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승차공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는 '쏘카' '타다' '풀러스' 등이 있는데요. 이번 합의로 카카오 카풀이 추가될 경우 약 4개 업체가 승차공유 서비스를 제공하게 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 복귀를 통해 승차공유 시장의 전체 규모가 자체가 커질 수는 있다"면서도 "원래부터 카풀은 '출퇴근 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고 법이 인정한 서비스였는데, 이번 합의문에서 평일 출퇴근 시간 등으로 운영 시간을 한정시키면서 승차공유 시장을 더 좁게 만들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일부 이해 관계자들끼리 모여서 내놓은 합의인 것 같다"며 "다양한 이동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승객들의 편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김현주·양봉식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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