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부재리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같은 사건을 두 번 재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사건에 대해 일단 판결이 내려지고 그것이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소송으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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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21일 사법시험 존치를 요구하는 이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공무담임권이란 공무원이 돼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뜻한다. 우리 헌법 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현행법상 공무원인 판검사가 되려면 반드시 법조인 자격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역시 현행법상 법조인이 되려면 반드시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만 한다. A씨의 요구 사항은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아도 사시 합격을 통해 법조인이 돼 판검사 등 공무원이 될 길을 열어 달라’는 취지다.
헌재 제1지정재판부(재판장 유남석 헌재소장)는 지난달 말 A씨의 헌법소원을 ‘각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하란 소송 제기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해 더 깊이 살펴볼 것도 없이 심리 절차를 종결하는 처분을 뜻한다.
눈길을 끄는 건 헌재가 각하의 근거로 ‘같은 사건을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들었다는 점이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7년 12월28일 A씨 등이 “사시 폐지는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바로 이 점을 들어 헌재는 “A씨의 이번 심판 청구는 2017년 합헌 결정이 내려진 사건과 청구인 및 심판 대상 조항이 동일하고 그 쟁점 또한 실질적으로 동일하므로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반돼 부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번 헌재 결정은 앞으로 옛 사시 수험생들이 사시 부활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똑같은 헌법소원을 내더라도 일사부재리 원칙에 근거해 전부 각하 처분할 것임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17년 12월 ‘사시 폐지는 합헌’이란 헌재 결정이 나올 당시 무려 재판관 4명이 위헌 취지 반대의견을 냈다. 당시 위헌론에 섰던 재판관들 가운데 이진성 전 헌재소장과 김창종·안창호 전 재판관은 지난해 9월 퇴임했다. 가장 강력한 위헌 의견을 냈던 조용호 재판관 역시 오는 4월 임기만료로 물러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사시 존치를 주장했던 재판관 전원이 무대에서 퇴장했거나 곧 퇴장하는 셈”이라며 “헌재의 위헌심사를 통한 사시 부활 시도는 이제 어려워진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전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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