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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필먼트 물류' 본업 집중하기 위해 대통령 일감도 사양했죠" [궤도 밖 나의 길]

입력 : 2019-01-20 19:14:10 수정 : 2019-01-20 19: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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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물류대행업체 ‘두손컴퍼니’ 박찬재 대표 / 노숙인 강제퇴거 냉담한 시선에 충격 / 단순봉사 아닌 상생 위해 창업 결심 / “이윤 창출해 소셜벤처 확산 유도할 것” / 미국 아마존 시스템 벤치마킹 통해 영세업체 제품 포장·배송 지원 강화 / 작년엔 청와대 명절 선물 배송 맡아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명절 선물세트는 공개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평창동계올림픽과 기간이 겹친 설에는 평창산 제사용 전통주인 ‘서주’(감자술) 등을 선보였고, 추석에는 울릉도 부지갱이, 강화도 홍새우 등 전국 섬지역 농·수·임산물을 골고루 구성해 지역통합의 의미를 담아냈다. 선물을 받은 1만여명 중 가장 많은 대상은 독거노인, 한부모 가족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마음’을 배달한 업체는 어디일까. 2015년 3월 물류 서비스를 시작해 지난해 설 기준 두 해도 채 안 된 물류대행업체였다. 이름은 ‘두손컴퍼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제품으로 유명한 ‘마리몬드’와 함께 한국 소셜벤처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곳이다. 소셜벤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민을 토대로 창업한 기업을 말한다. 두손컴퍼니는 2012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노숙인들을 고용해 옷걸이를 만들며 출발했다. 문 대통령의 선물이 지닌 의미와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기한에 맞춰 대통령의 선물을 정확한 장소에 배달하려면 그에 걸맞은 ‘캐파’(CAPA·생산능력)는 필수다. 청와대가 이제 막 물류에 뛰어든 두손컴퍼니를 선택한 것은 다소 무모해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화에서 “자세한 기준은 말할 수 없다”면서도 “문 대통령이 강조했듯 사회적 기업들이 활성화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말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소셜벤처 창업공간 ‘헤이그라운드’에서 제3차 일자리위원회를 열고 소셜벤처 창업과 성장에 집중 투자할 구상을 밝혔다.

두손컴퍼니를 설립한 박찬재(사진) 대표의 나이는 올해로 만 서른하나. 또래와는 사뭇 다른 길을 걷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기자는 지난 15일 경기 남양주시 이패동에 위치한 두손컴퍼니의 물류대행 브랜드 ‘품고(Poomgo)’의 창고를 찾았다.

◆주변 핀잔도 ‘창업 DNA’ 막지 못해

“야, 너도 빨리 취업해야지. 언제까지 그거 하고 있을 거야.”

박 대표가 노숙인을 고용해 그들의 자활을 돕는 친환경 종이 옷걸이 사업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초부터다. 이후 교육부가 주관하는 ‘2013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까지 받았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주변 친구들은 여전히 두손컴퍼니의 지속가능성에 의심을 품었다. 박 대표는 “다 절 걱정해준다고 한 얘기였지만, 제가 하는 일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소셜벤처 두손컴퍼니의 박찬재 대표가 지난 15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이패동에 있는 회사 물류센터에서 물류재고를 살펴보고 있다.
남양주=서상배 선임기자
친구들의 핀잔에도 흔들림 없이 사회적 기업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창업을 통해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박 대표의 뚜렷한 신념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2011년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사건을 둘러싼 사회의 냉담한 시선에 충격을 받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한다고 하는데, 내가 노숙인이 되면 사회가 날 저렇게 대하겠구나 생각했다”며 “단순히 기부나 봉사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박 대표는 오히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수익을 추구하는 사업가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희가 나중에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고작 ‘사회적 대기업’ 1개일 뿐이에요. 100개는 나와줘야 사회가 바뀔 것”이라며 “두손컴퍼니를 보고 용기를 얻어 소셜벤처를 창업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래서 전문성을 가지고 큰 이윤을 내는 게 저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류 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두손컴퍼니는 연매출 20억원을 달성했다.

◆중소업체 지원 위해 靑 일감 사양…“스타트업 아이디어 보호해야”

“대통령 선물 보내는 거, 왜 그만뒀나?”

‘돌직구’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통령발 선물을 담당하는 물류업체 관련 정보는 대외비에 속한다. 업체도 청와대와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야 그 사실을 공개할 수 있다. 앞서 두손컴퍼니는 올해부터 대통령 선물 배송을 맡지 않겠다고 청와대에 통보했다. 머뭇거리던 박 대표는 “본업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두손컴퍼니의 목표는 미국의 ‘아마존’과 같은 ‘한국형 풀필먼트(Fulfilment) 업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풀필먼트는 물류업체가 고객의 주문에 맞춰 제품을 소싱, 포장하고 배송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온라인 중소 사업체의 경우 생산 단위가 작아 물류업체들로부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다. 이를 본 박 대표는 “좋은 아이디어로 출발한 제품이 포장, 배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장되는 게 너무 아까웠다”며 “이들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다 보니 ‘소규모 전문 물류대행’인 ‘품고’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 관련 물류를 전담한다면 업체 경력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본업’인 영세 스타트업 지원에 소홀해질 거라고 판단, 청와대 일감을 사양하는 과감한 수를 뒀다.

박 대표는 앞으로 스타트업이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선 취약점인 ‘아이디어 저작권’을 정부가 나서서 보호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대기업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을 활발하게 인수해 같이 성장한다. 제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남양주=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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