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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지음/이근세 옮김/아카넷/2만4700원 |
‘스피노자 전집’(SPINOZA OPERA)의 제4권 서간집(EPISTOLAE)에 있는 84통의 편지를 완역해 낸 책이다. 17세기 철학자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오늘날의 논문집과 유사하다. 통상 익명이 아니고 공개되었기에, 편지를 통해 당시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엿볼 수 있다. 편지는 철학을 개척한 당대 학자의 삶이 실질적으로 표현된 독보적인 문헌이다. 스피노자의 편지 역시 그를 알 수 있는 1차 문헌인 셈이다.
스피노자는 당대를 초월한 용기 있는 철학 거장으로 유명하다. 당시 기독교가 지배하는 유럽 사회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 목숨을 앗아가고 탄압하는 엄혹한 시대였다. 그는 목숨을 걸고 당시 기독교의 교리를 신랄히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당시 성직자들은 위선자로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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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국립도서관에 있는 스피노자 전집 초판본으로, 우주의 질서와 인간윤리를 설파해놓은 고전이다. |
스피노자는 유대교회의 압박에 순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스피노자는 30일간 공동체에서 제외되는 소파문에 선고된다. 소파문은 유대교로 회귀하는 일종의 예비 기간이었다. 이 기한이 지나고도 스피노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1656년 암스테르담의 유대교회 공동체는 스피노자를 대파문에 처한다. 대파문으로 스피노자는 철저하게 배척되고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된다. 아무도 모르는 집 다락방에서 하숙생으로 시간을 보낸다.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렌즈를 연마하는 기술을 배웠다. 렌즈를 가공하는 기술로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창출하고 집필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철학체계의 정립과 더불어 친구들도 생기고 제자들도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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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종교적 삶의 허구성을 비판하다 도망자의 생을 살아간 불행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를 초월하고 먼 미래를 내다본 지혜로운 인물이었다. |
스피노자 철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스피노자의 편지가 없었다면, 그의 존재론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간 스피노자 관련 1차 자료가 국내엔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생각과 이념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고전이다. 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속성’이나 ‘무한 양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풀이되어 있다. 예수의 부활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스피노자의 생각도 담겨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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