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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국호에 나타난 역사 계승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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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30 23:14:54 수정 : 2018-11-30 23: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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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왕조 들어설 때 옛 국호 반영 / 조선 ‘단군시조’ 자부심 나타내 올해는 918년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지 1100년이 되는 해이다. 고려라는 국호에는 고구려 계승 의식이 담겨져 있다. 고려가 건국 후 북진정책을 적극 추진한 것에는 고구려 계승 의식이 반영돼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우리 역사에서는 새 왕조가 탄생한 후 국호를 정할 때는 옛 국호를 적극 반영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신라와 더불어 후삼국 시대를 연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대표적이다. 892년 견훤은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새 국가를 세우고 스스로 ‘후백제왕’이라 했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옛 백제에 대한 향수가 커진 것을 반영해 국호를 ‘후백제’라고 한 것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신라의 왕족 출신이었던 궁예 역시 신라 하대의 모순을 틈타 901년 송악에 새 나라를 건국하고, 국호를 ‘후고구려’라 했다. 송악과 철원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중앙을 중심지로 삼은 궁예는 옛 고구려 지역민의 반(反)신라적인 정서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궁예는 ‘후고구려’ 이후 ‘마진(摩震)’, ‘태봉(泰封)’으로 국호를 바꿨는데, 역사상 가장 국호를 많이 바꾼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1392년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 왕조는 새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 그런데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고조선의 역사 계승 의식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 역사의 시작이 되는 고조선의 건국자 단군(檀君)을 민족의 시조로 보는 인식은 고려 후기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늘의 자손인 주몽을 건국자로 보는 고구려나 알에서 나온 혁거세를 시조로 보는 신라의 역사의식 속에 단군의 존재는 없었다.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후기 몽골 간섭 시기로,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임을 분명히 서술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 이승휴가 저술한 ‘제왕운기’에도 단군이 등장한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의 글 등에는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단군조선’에서 나타나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의식과 함께 단군 조선 이후 등장하는 기자(箕子) 조선에 대한 자부심도 나타난다.

기자는 중국의 은(殷)나라가 멸망하고 주(周)나라가 건국될 때 우리 땅에 들어와 기자 조선을 세우면서 중국의 선진문화를 전파시킨 인물로 인식됐다. 우리 역사의 시작부터 중국의 문화와 도덕을 전수받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즉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단군 조선에 담긴 천손(天孫) 의식과 기자 조선에서 나타나는 도덕적·문화적 자부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조선왕조는 ‘조선’이라는 국호로 멸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조선왕조의 국호도 한 번 바뀌었다. 1897년 고종이 왕의 나라가 아닌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한 것이다. ‘대한’이라는 국호에는 ‘한(韓)’ 계승 의식이 나타나 있다. 고대에 기자 조선이 북쪽에 있을 때 기자의 후예가 남쪽으로 내려가 세운 나라가 삼한(三韓)이었고, 조선후기에는 삼한이 우리 역사에서 정통이 된다고 보는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이 대두됐다.

이러한 ‘삼한’에 대한 역사의식의 강화는 고종 때 황제국의 면모를 새롭게 하는 국호를 정할 때, ‘한’이 들어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한’ 중에서도 ‘큰 한’이란 뜻으로 ‘대한’이라 했고, 황제국의 나라라는 뜻으로 ‘제국’이라 한 것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강제적인 한일병합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1919년 상해에는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임시정부의 국호가 ‘대한민국’이 된 것 역시 대한제국의 ‘대한’은 계승하면서도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국이 됐으므로 ‘대한민국’이라 한 것이다.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대한민국은 현재의 국호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북한의 국호에 ‘조선’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고대에 기자 조선이 북쪽에 있던 시기, 남쪽에 삼한의 나라가 존속했던 시기 국호를 떠올리게도 한다. 국호에 나타난 역사 계승의식을 살펴보면서 우리 국호의 변천사를 알아보기 바란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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