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 키스 해링 그림의 대표 아이콘 중 하나인 개. 해링의 그림에서 개는 권력을 상징한다. |
해링의 그림은 매우 간결한 선으로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난해하지 않다. 누구나 척 보면 척,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귀엽고 통통 튄다. 보편적이면서 특이하다. 거의 낙서에 가까워 미술전시장보다는 지하철 벽이나 디자인 소품에 더욱 잘 어울린다.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예술’, 그것이 해링의 철학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지하 2층 배움터에서 24일 그의 철학과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전시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가 개막했다.
해링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키스 해링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요 작품 175점을 선보인다. 키스 해링 단독전시는 2010년에 이어 두 번째다.
![]() |
빛나는 아기. 아기의 순수함과 에너지를 좋아하고 닮고 싶어했던 키스 해링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아기 그림을 그렸다. |
◆예술이 된 낙서, 아이콘의 시초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해링은 항상 예술의 폐쇄성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 지하철에서 그래피티를 접한 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를 깨달았다.
해링은 그때부터 검은색 종이로 덮인 지하철역 광고판에 분필로 아기, 동물, 텔레비전, 사람 등 그림을 그려갔다. 경찰과 역무원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작업은 늘 순식간에 이뤄졌다.
‘지하철 드로잉’은 예술가와 소수 상위층만을 위한 기존 예술 질서를 거부하는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그래피티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해링은 예술계의 ‘악동’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비틀스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다.
유명해지면서 해링은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더욱 밀어붙였다. 포스터, 음악 앨범 커버 디자인 등을 통해 대중이 자신의 예술을 더욱 쉽게 접하도록 만들었다.
해링은 많은 뮤지션들과 협업했는데, 몇몇 작업은 아예 그들의 음악과 떨어질 수 없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데이비드 보위의 1983년 앨범 ‘위드아웃 유’다.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이 밝게 빛나는 형태로 그려진 이 간결한 그림은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과 연결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링은 예술을 통해 소리와 메시지를 시각화한 몇 안 되는 예술가였다. 그는 특히 힙합 음악을 즐겼는데, 그림에서 사람의 몸을 둘러싼 직선과 곡선을 통해 힙합의 에너지와 비트를 표현했다. 그는 클럽에서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동갑내기 마돈나와 절친하게 지냈고, 자신보다 서른 살 많은 앤디 워홀을 만나며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키스 해링의 작품은 대부분 상징적인 몇 개의 아이콘으로 채워진다. 특히 그가 사랑한 것은 ‘아기’였다. 그는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도 ‘빛나는 아기’를 그렸다. 아기는 몸에서 빛줄기를 뿜어내며 에너지를 갖고 쉼 없이 기어 다닌다. 해링은 순수하고 에너지 가득한 아기를 닮고 싶어했고 실제 그렇게 살았다. 그가 그린 빛나는 아기는 해링 자신이었다.
아기뿐 아니라 웃는 얼굴, 하트, 천사, 짖는 개, 돌고래 등 해링은 여러 가지 상징을 만들어냈다. 이는 오늘날 사용되는 이모티콘의 시초였다.
![]() |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초대형 작품 ‘피플’. 키스 해링의 뜻에 따라 원래 그린 방향에서 거꾸로 뒤집어 건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
◆팝숍과 공익 포스터… 모두를 위한 예술
“한 명의 부자가 100달러짜리 그림 한 점을 사는 것보다, 100명의 사람이 내 그림이 그려진 1달러짜리 티셔츠를 입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던 해링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접하고 소장하고 구입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문을 연 것이 뉴욕과 도쿄의 팝숍이었다. 그 시기 ‘지하철 드로잉’의 가치가 높아져 도난당하는 일이 많아졌던 것도 팝숍을 만든 계기 중 하나다.
팝숍은 해링의 작품으로 채워졌으며 직접 디자인한 핀 버튼, 티셔츠, 잡화 등을 판매했다.
해링은 “나는 내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길 바랐고, 다양한 사람들, 심지어 어린이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 되기를 바랐다”며 “이런 노력의 결과로 언젠가 거리의 아이들이 예술에 익숙해져 이들이 미술관에 갔을 때도 어색하지 않게 친숙한 느낌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팝숍을 “너무 상업적이다”고 비판했지만 해링은 실제 팝숍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어린이와 에이즈 환자를 위해 기부했다. 해링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그림은 많은 기업의 제품에 사용되며 수익의 일부는 기부되고 있다. 키스 해링을 모르더라도 그의 그림이 친숙한 이유이자, 그의 그림이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인 이유다.
해링은 작품을 통해 단순히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목적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는 전쟁 반대, 인종·동성애자 차별 반대, 마약 퇴치 등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그렸고 사재를 털어 이를 복사해 길거리에서 나눠주기도 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많은 지인들이 에이즈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건강한 성생활을 강조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던 1988년, 해링 자신이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나이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최대한 자신의 그림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좀더 확장된 예술관을 펼치기 시작했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새로운 예술, 세상을 향한 보편적 예술을 위한 열정으로 변모했다. 탄생, 인생, 죽음 등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작품에 담겼다. 어린이를 위한 ‘파랑과 빨강의 이야기’, 비트 세대의 거장 윌리엄 버로스와 함께 작업한 ‘종말’ 시리즈 등은 삶과 사랑에 대한 해링의 열정이다.
해링은 31년의 인생과 10년의 짧은 예술 인생을 뒤로하고 1990년 세상을 떠났다. 떠나기 한 달 전, 해링은 자신의 작업 초기에 제작한 가장 순수한 시각적 형태들을 복제해 17개의 실크스크린 포트폴리오의 최종판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최종판인 ‘플루프린팅’과 많이 알려지지 않은 ‘피라미드’, 초대형 작품인 ‘피플’ 등이 국내 최초로 공개되며, ‘빛나는 아기’, ‘짖는 개’ 등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또 해링의 생전 작업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그의 확고한 철학과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17일까지 휴무일 없이 계속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