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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용서한 날, 나는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범죄, 처벌만이 끝 아니다]

입력 : 2018-10-08 19:26:16 수정 : 2018-10-08 23: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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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살인범과 피해자 유족의 만남 / 서울 남부교도소 ‘회복 위한 여정’ 마련 / 비슷한 사건 겪은 가해자·유족 만남 주선 / 강도에 母·妻·4대 독자 아들 잃은 아버지 / 다른 범죄자들 만나 못다한 이야기 꺼내 / 깊었던 고통 풀리니 그들의 상처 보여 / “저들도 화목한 가정서 자랐다면” 연민도 / 범인 사죄 편지 보내와… 마음으로 용서 묻고 싶었다, 원한관계도 없는 내 가족들에게 왜 그랬냐고. 사건 후 6년이 지난 2009년 살인범이 갇혀 있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찾아갔다. ‘그놈’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구치소에서 열린 천주교 미사가 끝난 뒤 면회를 요청했다. 구치소장이 반대해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냥 성경책만 한 권 전달하고 발길을 돌렸다.

나 박기현(77·가명)은 2003년 10월 연쇄살인범의 손에 어머니와 아내, 4대 독자 아들을 잃었다. 범인은 2005년 사형이 확정돼 서울구치소를 거쳐 지금은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사건 당시 서울 강남의 한 건물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출근하면서 퇴근 후 오후 6시30분쯤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줄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집 근처로 운동을 다녀오던 아내가 가해자에게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그는 담벼락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가 일을 저질렀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 고통의 연속이었다. 범행 현장이기도 한 집을 떠나 경기도 과천의 딸 집에서 살았다. 밤에 한두 시간 이상 잘 수 없었고 대인기피증까지 걸렸다. ‘가족을 따라가자’는 생각이 잠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일요일마다 관악산에 있는 절을 찾았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2012년 7월 서울남부교도소에서 ‘회복을 위한 여정’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로부터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을 대표해 참여해 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철환(가명)씨 등 가해자 4명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놈’은 아니지만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2009년 서울구치소 기억도 떠올랐다.

프로그램 첫날에는 참여를 후회했다. 가해자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가해자들이 조금씩 입을 열었다. 마지막 날에는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지금 어떤 생각인지 같은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난 2012년 7월 ‘회복을 위한 여정’ 프로그램에 참여한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 박기현(가명·왼쪽)씨가 가해자인 수형자의 왼쪽 발목에 묶인 노란 끈을 풀어주고 있다. 이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앞으로 책임감 있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그들에게 난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얘기해 줬다. ‘사건 발생 10개월 후 가족을 앗아간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죽어도 원이 없겠다 싶어 한강 다리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당신들은 출소하면 끝이지만 가족을 잃은 우리는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들에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10년의 고통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마지막에는 그들의 손을 일일이 붙잡고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껴안아줬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죄를 면해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럴 권한도 없다. 대신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에서 피해자로서 죄를 용서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서로 눈물을 흘렸다.

그들과 만남을 통해 내 깊은 상처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됐다. 살인자는 다들 도깨비인 줄 안다. 더러 악랄한 사람도 있겠지만 저런 사람이 어떻게 살인을 했을까 싶은 이가 많다. 그들이 어린 시절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아들이 살아 있다면 또래일 법한 어떤 재소자한테는 ‘교도소에 있을 때 영어든 중국어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젠 내 가족을 살해한 범인도 마음으로 용서했다. 그가 교도소에서 편지를 써 보냈다. 자신의 수갑 찬 손을 그림으로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범행 동기를 적어 보냈다. 우리 옆집에 살던 어느 변호사 집을 털려다가 벌인 일이라고 했다. 결손가정 출신인 그가 올바른 가정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우리 사회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범인을 처벌한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만도 아니다.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한 날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어느 살인자의 고백

나 이철환(가명)은 2002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당시 연예기획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친여동생을 폭행한 조직폭력배와 다투던 중 그만 흉기로 찌르고 말았다.

살인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징역 12년으로 감형됐다. 2013년 전자발찌를 찬 채로 1년 일찍 가석방됐다.

2012년 7월 아직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다. 교도관이 ‘회복을 위한 여정’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면서 참여 의사를 물었다.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을 직접 만나는 것이라니….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다.

솔직히 ‘곧 있을 가석방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권유에 귀가 솔깃해졌다.

나를 포함해 살인사건 가해자 4명이 참여했다. 다른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족인 박기현(가명) 선생님을 그때 처음 봤다. 일면식도 없는 분인데 갑자기 죄책감과 불안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살인범에게 얼마나 적대감이 클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프로그램 첫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희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 끝나지만 가족을 잃은 피해자 유족은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분이 들려준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게도 가족이 있다. 병약한 여동생과 살림만 했던 어머니….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변호사 비용과 합의금으로 몇 억원 빚을 지고 여동생은 이혼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아 가족 얼굴이라도 볼 수 있다. 아예 그럴 희망조차 없는 피해자 유족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둘째날 박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았다. ‘사랑한다. 피해자 유족으로서 용서한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고개를 숙인 채 거듭 죄송하다고 했다. 내 사건 피해자 유족한테도 10년간 하지 못해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교도소에서 울분에 쌓여 살았다.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을 뿐이지 나쁜 사람이 아냐.’ 하지만 박 선생님을 보며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다신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출소 후 지금은 서울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산다. 내년 초 결혼도 할 예정이다.

‘저로 인해 큰 아픔을 겪은 피해자와 그 가족분들께 늦게나마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를 통한 ‘회복적 정의’ 구현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취지에서 2012년 7월 서울남부교도소의 ‘회복을 위한 여정’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씨와 다른 살인사건의 가해자 이철환(42·가명)씨를 심층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회복을 위한 여정’이란?

2012년 7월16일부터 5일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실시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다. 살인을 저지른 성인 수형자를 대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마주하는 기회를 마련한 건 국내에서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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