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이케 도쿄도지사 |
1923년 9월1일 간토(關東)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발음이 조선인의 생사를 결정했다. 사망 및 행방불명자가 10만5000명에 달하는 재난이 닥치자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 수습 지연에 따른 국민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가 우물에 독약을 넣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소문에 격분한 일본인들은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해 관헌(관리)들과 함께 조선인을 잡아 학살하거나 구타했다. 조선인의 경우 ‘추코엔코칫센’으로 발음하기 쉬운 이 문장을 시켜보거나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부르게 하고 교육칙어(勅語·국민교육헌장 격)를 암기하게 해 조선인을 골라냈다. 당시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이 사건으로 사망한 조선인 숫자를 6661명으로 보도했다.
간토대지진 95주년을 앞두고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당시 목숨을 잃은 조선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도쿄 신주쿠구의 비영리단체(NPO)인 고려박물관에서는 지난달 4일 시작한 ‘조선인 학살과 사회약자’ 특별전을 12월2일까지 개최할 예정이다.
고려박물관은 30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나 대외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 일본 화가 가와메 데이지(河目悌二)의 ‘조선인학살도(圖)’ 복사본,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그린 조선인 학살 그림, 각종 신문 및 잡지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 따르면 8월 들어 하루에 10∼45명 정도 관람하는데 한국인도 있지만 대체로 일본인이다. 전시책임자인 아라이 가쓰히로(新井勝紘)씨는 “이 사건에 대해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배상이나 공식 위령 행사도 없다”며 “이번 전시는 조선인학살사건을 둘러싼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타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 |
일본 도쿄 신주쿠구의 비영리단체(NPO) 고려박물관에서 30일 관람객들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한 시민사회의 치유 노력에도 당국의 냉대는 여전하다. 극우 성향의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지난 2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민단체들이 모인 간토대지진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지난 8일 도쿄도청을 방문해 고이케 지사에게 추도문을 보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요청문을 8700여개의 서명과 함께 제출했다. 서명 운동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됐으며 개인 8596명, 단체 140개의 서명을 모았다. 고려박물관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이사장은 “당국은 조선인만 추도할 수는 없고 간토대지진 희생자 전체에 대한 추도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재해로 사망한 것과 사람 손으로 살해된 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우리 일본인들은 이 사건을 가슴에 담아 확실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