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만족’ 빙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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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디저트 전문 카페가 생기면서 손님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지다 보니 평범한 빙수로는 눈길조차 끌지 못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순으로 메리어트호텔 코코넛 빙수, 티라벤토 자색고구마 실타래 빙수, 반전형제 멜론 빙수, 정플헤랑 초콜릿 빙수, 신라호텔 망고빙수. |
썰어 먹고 올리브 오일 뿌려 먹고/더위 만큼 뜨거운 이색 빙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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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벤토 자색고구마 실타래 빙수 |
“주문하신 빙수 나왔습니다”.
서울 낮 최고 기온이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섭씨 37를 넘기며 최악의 폭염이 전국을 강타한 7월 28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엔틱가구 거리 골목안 빙수전문 카페. 주말에 온 것을 후회하며 땡볕에서 30분동안의 기다림 끝에 겨우 아기자기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 앉아 땀을 훔친다. 주문한 빙수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주로 올라 오는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 자색고구마 실타래 빙수. 일반 빙수 그릇이 아닌 사각 우유빛 접시 위에 얹힌 연보라빛 곱디고운 자태. 마치 실을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아올린 듯한 비주얼은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런데 빙수와 함께 나온 나이프와 포크.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란 말인가. 옆 테이블을 훔쳐보니 마치 스테이크를 썰듯 빙수를 잘라 포크로 찍어 먹는다. 잘라 먹는 빙수라니! 당황스러우면서 이색체험에 빙수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지 못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 퍼지는 시원하고 신선하면서도 은은한 고구마 향이 오랜 기다림의 노고와 불쾌지수를 금세 날려버린다. 자칭 ‘빙수 덕후’ 민모(35)씨는 소문난 빙수 전문점은 다 가봤지만 실타래 빙수 만큼 오감을 만족하는 빙수는 처음이다. 달콤하면서 고소하면서 입에서 살살 녹는 엄청 부드러운 고구마 맛이 입안을 꽉 채운다”며 엄치를 치켜세웠다.
#냉정과 열정 사이 ‘빙수 열전’
바야흐로 빙수의 계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에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빙수만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거칠고 투박한 얼음 빙수가 대부분이던 시절인 1985년 현대백화점 서울 압구정 본점 5층에 밀탑 빙수가 문을 열면서 얼음을 눈처럼 곱게 갈은 프리미엄 눈꽃빙수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매년 다양한 빙수가 쏟아져 나오지만 곳곳에 디저트 전문 카페가 생기면서 손님들의 입맛도 까다로와 지다보니 이제 평범한 빙수로는 눈길 조차 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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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벤토 실타래 빙수 제조 과정 |
2016년 이태원에 문을 연 티라벤토는 실타래 빙수가 독특한 비주얼과 맛으로 SNS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 가장 핫한 곳으로 떠올랐다. 빙수 소개 영상이 2억 조회가 넘어서면서 국내 특급호텔은 물론, 대만과 인도 등 해외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티라벤토를 찾을 정도다. 평일에도 하루 200명 정도가 찾는데 이날도 대기하다 포기하고 돌아간 손님이 더 많을 정도로 이탈리아어로 ‘바람이 부는 골목’이라는 카페 이름답게 빙수 마니아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 자색고구마, 녹차, 커피, 바나나, 딸기, 호지차 등 12가지 빙수를 즐길 수 있고 허브를 얹은 아이스크림과 단팥을 뿌린 떡이 함께 나온다. 너무 차지않아 겨울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7500원으로 가성비도 뛰어난 편.
프랜차이저 메뉴를 개발하던 공동욱 대표가 2년 동안의 연구 끝에 눈꽃빙수 기계를 이용해 7∼8㎝ 길이로 실처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어느날 우연하게 빙수가 실처럼 길게 뽑아져 나오는 걸 발견한 뒤 끊임없이 시도해 최대 18cm까지 실처럼 만들 수 있게 됐다. 얼음과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우유와 파우더만 황금비율로 섞었는데 다 먹을 때까지 녹지 않을 만큼 밀도가 높아 칼로 썰어 먹을 수 있다. 너무 차지 않아 겨울에도 찾는 이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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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형제 멜론 빙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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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형제 파인애플 빙수 |
경리단길에 자리잡은 반전형제도 독특한 비주얼이 압도한다. 파인애플, 멜론, 수박 3가지 과일빙수를 맛 볼수 있는데 30cm가량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모습이 압권이다. 과일 1개를 통째로 갈고 잘라 넣었기 때문에 과일의 맛이 잘 살아있다. 가격은 1만5000원이지만 여성 3∼4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다. 얼음을 갈아 넣었기 때문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빙수를 원한다면 반전형제를 찾으시라. 단, 너무 찬 것을 싫어하는 이들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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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체리 토마토 빙수 SPC 제공 |
SPC그룹에서 운영하는 서울 이태원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베라의 체리 토마토 빙수는 올리브 오일을 뿌려 먹는다. 토마토에 많은 항산화 물질 리코펜은 지용성이라 올리브 오일과 함께 먹으면 흡수율이 높아진다. 2015년 처음 출시한 이후 고객 반응이 좋아 매년 여름철 선보이는 디저트 메뉴인데 잘게 갈린 얼음 위에 새콤달콤한 체리토마토와 향긋한 바질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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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빙수 도쿄빙수 제공 |
2016년 서울 망원동에서 시작한 도쿄빙수는 토마토 빙수의 원조로 SNS을 타소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 급속도로 가맹점이 늘 정도로 인기다. 토마토 퓌레를 부드럽게 간 얼음 위에 부어 청량감이 매력적인 일본식 빙수를 잘 살렸다. 최근에는 복숭아 빙수도 새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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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빙수 부빙 제공 |
#화려함 대신 건강한 맛으로 승부한다
이것저것 넣고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단팥빙수다. 서울 부암동 창의문 고갯길의 부빙은 모든 소스를 직접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팥빙수는 완도의 팥 재배 농가와 계약해서 1년치를 미리 확보하고 부암동의 터줏대감 동양방앗간에 공급받는 쌀 가루로 직접 떡을 만든다. 여름철에는 옥수수 빙수가 최고 인기다. 제주도와 해남에서 나는 당도 높은 초당 옥수수를 직접 쪄서 만드는데 식감이 좋고 수분이 많아 일반 찰옥수수보다 맛이 좋다. 차가운 콘 스프 느낌인데 독특한 점은 통후추를 뿌려 먹는다. 옥수수의 은은한 맛이랑 묘하게 잘 어울린다. 직접 설탕을 녹여 시럽을 만든 카라멜 빙수에는 소금을 뿌려 먹는데 소위 ‘단짠단짠’의 중독성이 높다. 녹차 빙수는 일본 시주오카에서 직접 구입한 말차를, 유자 빙수는 고흥산 유자를 직접 재워 만든다. 곧 자두와 장미 빙수도 선보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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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 행복이 가득한 집 제공 |
후암동에 자리잡은 행복이 가득한 집은 팥의 고장 전라남도 영암의 해팥을 쓰는데 팥알이 좀 커 식감이 좋고 흙의 풍미가 많이 난다. 팥을 직접 삶아 앙금을 만들때 설탕을 적게 넣어 당도를 낮췄다. 대신 물과 얼음을 전혀 섞지 않고 유유만 100% 넣기 때문에 고소하고 진한 맛이 난다. 이태원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쌀롱 빠라디를 운영하는 최준 대표의 감각이 담긴 프랑스 시골 카페 같은 외관과 인테리어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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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 빙수 정폴헤랑 제공 |
러블리초코를 10년동안 운영하던 김동영씨와 정혜랑씨 부부가 요즘 맛집들로 넘쳐나는 서울 연남동에 1년전 문을 연 정폴헤랑은 초콜릿 전문가 답게 전공을 살린 독특한 초코 빙수가 인기다. 베트남산 카카오 원두를 직접 구워 만든 다크 생초콜릿과 로스팅한 카카오를 잘게 부순 카카오 닙스, 호두 브라우니,견과류를 곱게 갈은 얼음위에 듬뿍 얹어 초콜릿 마니아라면 꼭 먹어야봐야할 빙수다. 외국에도 소문나 최근 태국의 사업자가 현지에 매장을 내고 싶다며 찾아 오기도 했다. 김 대표가 태국을 다녀 온뒤 새롭게 개발한 빙수가 엘더플라워, 히비스커스, 레몬밤 등 허브꽃 빙수 삼총사다.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는 셔벗 스타일로 달콤 상큼한 매력 덕분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김 대표는 최근 장미 빙수도 선보였다. 정폴헤랑 네이밍 스토리도 재미있다. 김 대표가 프랑스 스타 쇼콜라티에 장 폴 에방 보다 더 맛있게 만들겠다며 와이프의 이름을 혼합해 지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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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과 홍시 빙수 카페수요일 제공 |
서울 명일동 카페수요일은 수정과 홍시, 생강, 복분자, 오미자 등 보통 빙수전문점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건강 빙수로 인기가 높다. 시그니처 메뉴인 수정과 홍시 빙수는 소화를 돕고 오미자 빙수는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에게 좋다고 한다. 오미자의 유기산이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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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빙수 신라호텔 제공 |
#호텔서 즐기는 작은 사치 럭셔리 빙수
호텔 빙수는 럭셔리 빙수의 격전지다. 보통 3만5000원을 넘어 매년 가격 논란을 부르지만 작은 사치를 즐기려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대표주자는 SNS를 통해 ‘망빙의 성지’로 자리잡은 신라호텔 애플 망고 빙수. 가격을 4만2000원에서 올해 5만4000원으로 올렸지만 주말에 길게는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린다. 제주산 애플망고를 쓰는데 떫지않고 새콤하며 은은하게 풍기는 사과향과 당도 높은 과즙이 특징이다. 어른 손만한 망고가 1개 반 정도가 들어가 여성 2∼3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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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빙수 JW메리어트서울 동대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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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빙수 JW메리어트서울 동대문 제공 |
2014년 선보인 JW메리어트서울 동대문 돔 빙수는 2인기준 8만원으로 럭셔리 빙수의 극치다. 눈꽃 얼음에 블루베리, 바닐라, 레몬 젤리, 복숭아, 아이스크림, 솜사탕이 올라가며 식용 순금과 꽃잎으로 장식한다. 함께 제공되는 샴페인의 대명사 돔페리뇽 한 잔을 솜사탕이 부어 먹는다. 올해는 코코넛 빙수, 헬로키티 빙수, 몽블랑 빙수도 선보였다. 코코넛 껍질모양의 초콜릿 그릇에 부드러운 코코넛 젤라또와 상큼한 파인애플 눈꽃 얼음을 담고 피나 콜라다, 말리부 럼 시럽, 코코넛 칩을 듬뿍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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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티라미슈·망고 치즈케이크 빙수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 제공 |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 로비 라운지에서 견과류 토핑을 잔뜩 올린 웰빙 빙수를 맛 볼 수 있다. 곱게 갈은 우유 얼음 위에 미숫가루, 몸에 좋은 볶은 콩, 현미, 해바라기씨, 대추를 얹어 고소한 맛을 잘 살렸다. 신선한 망고와 노보텔의 대표 치즈케이크 토핑으로 제공되는 망고 치즈케이크 빙수는 달콤하고 시원한 빙수와 부드러운 치즈케이크이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티라미수 빙수는 부드러운 마스카포네 치즈와 진한 에스프레소, 쌉싸름한 코코아파우더로 만들었다. 촉촉한 티라미수 케이크에 오레오 쿠키 등 다양한 토핑을 곁들여 눈과 입을 즐겁게한다. 호텔빙수 치고는 저렴한 3만2000원. 밀레니엄 서울힐튼 델리카트슨 실란트로 델리는 과일,망고, 녹차 빙수를 내놓았는데 아주 착한 가격인 1만5000원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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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코코넛 빙수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제공 |
고층에서 탁 트인 전망을 덤으로 즐길수 있는 곳도 있다.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은 망고 빙수에 이어 달콤한 코코넛 빙수를 선보였다. 진한 코코넛 밀크와 신선한 코코넛을 혼합해 풍부한 코코넛의 맛과 향을 잘 살렸고 아이스크림과 코코넛칩을 곁들여 식감이 뛰어나다. 신선한 제철과일도 곁들여 지며 사이드로 셰프가 직접 쑨 팥과 호텔 시그니처 디저트 래밍턴이 함께 나온다. 호텔 41층의 로비 라운지와 바, 피스트 레스토랑과 28층 핏 카페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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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빙수 콘래드 서울 제공 |
콘래드 서울 최상층 37 그릴 앤 바에서도 탁특인 전망과 함께 이색 플레이팅이 돋보이는 두 가지 빙수를 즐길 수 있다. 망고 빙수는 프리미엄 명차 브랜드 알트하우스(Althaus)의 얼그레이티를 우려내 깊고 진한 풍미가 담긴 부드러운 우유 얼음에 유기농 생 망고를 얹었다. 애플 수박 빙수는 수박과 애플 주스로 만든 상큼한 그라니따와 복숭아가 듬뿍 들어갔다. 돔 모양에 뚜겅으로 덮혀 나오는데 뚜껑을 열면 드라이아이스가 퍼지며 빙수가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 SNS에 동영상이 자주 오르는 빙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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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빙수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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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당근 빙수 파크 하얏트 서울도 호텔 제공 |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카페 라운지 갤러리에서는 매달 독특한 컨셉의 빙수를 즐길 수 있다. 8월15일까지는 복숭아 빙수. 진한 풍미의 우유 얼음 위에 새콤 달콤한 복숭아를 얹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밀크 초콜릿을 장식해 녹진한 풍미를 더했다. 샴페인을 첨가한 3개의 아이스 초코볼도 담긴다. 파크 하얏트 서울도 호텔 빙수의 선두주자. 24층 더 라운지에서 다섯 가지 빙수를 맛볼수 있는데 화분을 연상시키는 초콜릿 당근 빙수를 새로 선보였다. 발로나 초콜릿으로 만든 진한 초콜릿 밀크 아이스에 오렌지 초콜릿 크림을 얹고 당근 셔벳을 꽃아 장식했다. 여기에 짭쪼름한 맛의 초콜릿 크럼블을 가득 올려렸다.
호텔 빙수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로비 라운지 마루(Maru)에서 9월말까지 세계 각국을 담은 빙수들을 매주 내놓고 있으며 특히 카페 컨펙션 바이 포시즌스에서는 빙수를 테이크아웃할 수 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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