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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더위는 못참아”… 반년을 자는 ‘여름잠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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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9 10:00:00 수정 : 2018-07-18 20: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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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붉은점모시나비 생태 / 붉은점모시나비의 일생 / 알 속에서 16일 만에 애벌레 성장 / 190일간 웅크린 채 여름잠 빠져 / 태생적으로 한지성… 추워야 부화 / 반년을 알 속에서 버티는 힘은 / 알 껍질 다른 종보다 10배 두껍고 / 몸속 내동결물질은 1800배 많아 / 아웃도어·신약 소재 응용할 수도 / 자연에서 증식 성공까지 / 홀로세생태硏, 몇년 간 추적 관찰 / 강릉 자병산에서 자연 부화 확인 / 세계적 곤충 재도입 사례 가능성
‘이렇게 더운데 앞으로 한달을 어떻게 버티나’ 싶은 요즘이다.

선풍기에 얼음음료, 에어컨까지 동원해도 습관처럼 ‘덥다 더워’란 말이 절로 나오는 이런 날씨에, 그늘막을 찾아들 듯 알 속에 숨어버린 녀석이 있다.

1∼2주, 한두 달도 아니고 장장 190일 동안 잠을 잔다. 여름철 따가운 햇살이 되레 그리워질 무렵에야 알을 비집고 나오는 ‘여름잠의 끝판왕’ 붉은점모시나비 얘기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가 단체로 여름잠을 자고 있는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를 찾았다.

◆알에서 여름잠을 자는 붉은점모시나비

지난 6일 강원도 횡성. 대숲산 산자락에서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좁은 산길을 1㎞ 남짓 오르자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앞에 닿았다.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외 보전기관’이다.

‘홀로세’란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1만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질시대를 말한다. 인류 문명 탓에 절멸의 위기에 몰린 홀로세의 생물종을 지키겠다니,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한다.

나비 그림이 그려진 정문이 열리자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연구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소 전체 면적은 축구장 14개 크기에 맞먹는 9만9000㎡. 그 안에 1200종에 달하는 곤충이 자라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곤충들 사이에서 이강운 인천대 연구교수(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의 바로 옆자리, 말하자면 가장 ‘상석’에 붉은점모시나비 알 5000개가 놓여 있었다.

좁쌀만큼 작은 알이지만 이 안에는 다 자란 나비 애벌레가 깊은 여름잠에 빠져 있다. 애벌레는 다리가 생기면 ‘다 컸다’고 보는데, 붉은점모시나비는 알로 태어난 지 16일 만에 성장을 마치고 찬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며 반년을 알 속에서 웅크린 채 보낸다.

겨울잠만큼 흔하진 않아도 여름잠을 자는 동물은 제법 있다. 까나리가 그렇고, 무당벌레, 남반구의 거대물고기 폐어도 여름잠을 잔다. 나비 중에서는 표범나비 무리가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붉은점모시나비의 여름잠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하면(夏眠)하는 동물이 대체로 열대나 아열대에 사는 것과 달리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지성 동물이라는 점, 한여름 뜨거운 열기만 잠깐 피하는 게 아니라 추워져야 비로소 끝나는 ‘궁극의 여름잠’이라는 점이 그렇다.

이 교수는 “빙하기 때부터 추위에 적응해 와 태생적으로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선택한 생존 전략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붉은점모시나비(학술명 Parnassius bremeri)의 이름에 들어가는 파르나시우스는 그리스에 있는 2457m 높이의 파르나소스산에서 따온 것이다. 이름처럼 높은 산이나 히말라야 고원, 바이칼 호수처럼 추운 곳에 산다. 

그러나 한지성 나비라는 것 외에 붉은잠모시나비의 생태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005년 시작한 붉은점모시나비 증식이 번번이 실패하다 2011년이 돼서야 성공하게 된 이유다.

“애벌레가 자꾸 추운 겨울에 알에서 나오는 거예요. 보통 먹을 것도 많고, 날씨도 풀리는 초봄에 알 밖으로 나오는 게 상식인데 이 아이들은 차디찬 겨울에 나오니까, ‘아 이래서 멸종위기종이 됐나 보다’ 생각했죠.”

이 교수는 엄동설한에 알 밖으로 기어나오는 애벌레가 안쓰러워 실험실 안으로 들여놨다고 한다. 지극한 보살핌에도 살아남는 개체는 얼마 안 됐다. 그러다 2011년 말 ‘깜빡하고’ 애벌레를 바깥에 놔뒀는데,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그제야 춥기 때문에 부화한다는 걸 알게 됐죠. 여름부터 잠을 자 겨울에야 깨어나는 동물은 붉은점모시나비가 전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이강운 인천대 연구교수(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이 지난 6일 강원도 횡성에 있는 연구소 실험동에서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물장군의 다리를 살펴보고 있다. 홀로세연구소에서는 붉은점모시나비 외에도 물장군과 애기뿔소똥구리의 증식·복원 연구를 하고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애벌레는 무럭무럭 자라 완연한 봄이 되면 번데기 시기를 지나 마침내 하얀 바탕에 빨간점이 콕콕 찍힌 날개를 얻는다.

날개가 생겨 좋을 법도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순 없다. 나비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곤충은 대개 일생의 9할은 애벌레로, 1할은 성충으로 보낸다. 붉은점모시나비는 날개를 펼친 지 일주일, 길어야 15일 안에 알을 낳고 죽는다.

◆영하 40도∼영상 40도를 버티는 비밀

아침마다 포근한 침대와 야속하게 울리는 기상알람 사이에서 번뇌하는 사람들은 가끔 겨울잠·여름잠 자는 동물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러나 겨울잠·여름잠은 꿀잠보다는 사투에 가깝다.

다람쥐와 고슴도치 같은 작은 포유류는 체적에 비해 표면적이 커 체온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서 긴 잠을 자며 체온, 심박수, 호흡을 모두 최소화해 에너지를 아낀다. 얼룩다람쥐는 겨울잠을 자는 동안 심박수가 분당 200회에서 5회로 급감한다.

그런데 파충류나 곤충처럼 체온조절을 못하는 변온동물은 활력징후를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하다. 주위 온도에 따라 체온이 영하로 떨어져 체액이 얼면 혈관과 조직이 마치 파열된 수도관처럼 터져버릴 수 있다.

붉은점모시나비가 한여름에 잠들어 한겨울에 깨어나는 것도 ‘비장의 무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첫번째 비기는 올록볼록한 알껍질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붉은점모시나비의 알껍질을 살펴보면 전체가 ‘엠보싱 화장지’처럼 올록볼록하다. 같은 호랑나비과인 꼬리명주나비나 산호랑나비 알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다. 이런 요철 덕분에 붉은점모시나비의 알 두께는 꼬리명주나비의 10배, 산호랑나비의 20배에 달한다.

엠보싱 알껍질은 단열효과도 탁월해서 알 속 애벌레는 45도에서도 생존율이 91.7%에 달했지만,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38.5%만 살아남았다.

이 교수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알 구조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되면 건축이나 아웃도어 의류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번째 비기는 애벌레 몸에 들어있다.

한파 속에 알을 깨고 나온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글리세롤과 소르비톨, 트레할로스 등의 ‘내동결물질’을 갖고 있다. 알 상태로 월동하며 최근 해충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매미나방과 비교하면 붉은점모시나비의 내동결물질 함유량은 최대 1800배나 많다.

이 교수는 “앞으로 석유보다 생물자원이 더 비싼 값을 받을 것”이라며 “붉은점모시나비의 알 구조는 건축·아웃도어 의류 소재로 활용할 수 있고, 애벌레 내동결물질은 신약물질을 개발하는데 쓰일 수 있다”고 전했다.

연구소에서 고이 자란 붉은점모시나비는 고도가 높고 서늘하며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방사된다.

2014∼2016년 나비를 방사한 강릉시 자병산 석회석 광산에서는 방사 이듬해 애벌레가 발견됐다. 방사된 나비가 알을 낳아 부화까지 성공했다는 의미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재도입전문가그룹(RSG)은 2008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전 세계 종복원·재도입 사례 분석 보고서를 냈다. 2016년까지 분석된 290개의 사례 중 무척추동물은 22건, 그중에서 곤충은 14건에 불과하다. 붉은점모시나비가 자병산에 확실히 정착한다면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곤충 재도입 성공사례가 될 전망이다.

‘가지 못하게 꼭 잡으려 해도, 손에 쥔 바람처럼 생명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홈페이지 첫 화면에 적힌 글귀다. 한창 깊은 여름잠에 빠진 붉은점모시나비들이 내년 6월 부디 예쁜 날개를 팔락거리길 바란다.\

횡성=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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