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생 평균 1회 연루되는 민사소송
민사소송은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법률관계에 대한 다툼에서 출발하는데, 기본적으로 개인 간의 약속이나 계약에서 발생하는 분쟁이다. 대체로 약속을 했는데 이것의 이행 여부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다. 계약을 했는데 왜 이다지도 많은 계약이 분쟁에 빠진다는 것인가. 인간의 뇌는 약속을 해놓고, 왜 그것을 파기하려는 의사결정을 한단 말인가. 인간의 모든 생명활동은 기본적으로 유전자(DNA)와 뇌(Brain)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의 모든 의사결정은 뇌가 하지만, 뇌를 만드는 것은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타고난 것이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지만, 뇌는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태어나서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의사결정의 주체인 뇌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뇌가 바뀐다고 하는 것은 뇌 속의 뇌세포들이 상호 연결돼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에 해당하는 뇌세포회로가 형성됐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선천적인 요소(유전자)와 후천적인 요소(뇌세포)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유전자는 인간의 의사결정을 직접 하는 주체는 아니다. 유전자는 뇌의 구조와 의사결정 단계를 규정함으로써 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
◆왜 뇌는 약속을 파기하는가
우리 인간은 기쁜 상태를 좋아한다. 인간의 추구하는 것의 모든 행위는 이 기쁨을 위한 일이다. 사랑, 돈, 권력, 명예 등의 기본적인 욕망은 측핵(Nucleus accumbens)을 통해 인간 행동을 유혹한다. 이 측핵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가속기와 비슷한 일을 한다. 편도체(Amygdala)는 뇌의 중심부에서 측면 쪽에 위치한다. 편도체는 위험하거나 불쾌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회피행동을 관장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비슷한 일을 한다.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언제 밟을지 결정하는 기능은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al medial prefrontal cortex)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측핵과 편도체의 기능을 조정하는 일을 한다. 약속이란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다. 약속을 이행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측핵은 약속을 깨고 의무에서 벗어나 기쁨을 얻기를 원한다. 편도체는 약속 불이행의 부작용을 걱정한다. 측핵의 신호가 강하면 약속을 깰 것이고, 편도체 신호가 강하면 약속을 지킬 것이다.
◆DNA가 만들어 놓은 측핵과 편도체의 싸움
이와 같이 측핵과 편도체가 싸우도록 만든 것은 유전자이다. 또한 유전자는 의사결정의 경향성도 정해준다고 볼 수 있다. 경향성이라는 것은 가속기나 브레이크를 더 많이 밟는 경향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의사결정 과정이 동일하지만, 사람에 따라 유혹을 참지 못하는 특성이나 냉철하게 판단하는 특성이 있다. 또한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타고난 경향성을 바꾸기도 한다. 비행기 승무원들이 비상시 자기 자신보다 승객을 먼저 대피시키는 행동은 훈련에 의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러면 집단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많은 뇌가 모인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집단마다 구성원이 다르고 의사결정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독재 시스템은 집단 의사결정 시스템의 예이다. 당연히 집단 의사결정은 개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요소가 개입되고 복합적인 단계를 거친다. 이와 관련 인간의 특성 중의 하나는 개인 결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이다. 자신이 동료들에게 한 말은 가능하면 함부로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집단의 결정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개인의 의사결정은 집단보다 바꾸기 쉽다고 볼 수 있다.
◆DNA가 만들어 놓은 약속 파기 가능성
앞에서 우리나라의 민사소송 숫자가 놀라울 정도로 높다는 것을 보았다. 민사소송은 대부분 동일한 계약 문구에 대해 훗날 해석을 서로 달리 하는 데에 기인한다. 그 이유는 유전자가 우리 뇌의 구조를 그러한 행위를 허용하도록 만들어놓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측핵은 항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편도체는 부작용을 경계하며 조심한다. 뇌 속에서 편도체는 약속을 어길 때에 나타날 부작용 신호를 나타낸다. 측핵은 그럼에도 현재 원하는 것을 취하고자 하는 신호를 대변한다. 만약 측핵의 신호가 강하면 측핵이 승리한다. 측핵의 신호가 편도체 신호보다 더 크게 평가되는 것이다. 즉, 약속 불이행의 이익이 벌에 비해 크다고 판단되면, 약속을 파기한다. 그런데 유전자는 이렇게 매순간 이익을 계산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뇌의 메카니즘을 만들어 놓았고, 또한 개인별로 경향성을 규정해 주었다. 만일 유전자가 한번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이익을 다시 평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규정해놨다면 민사소송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집단의 의사결정 vs 개인의 의사결정
집단 간의 협약이나 약속이라면 개인처럼 간단하지 않다. 해당 집단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참여해 결정하는 구조이다. 당연히 한번 결정된 사항이 함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독재체제는 집단 의사결정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김정은 한 사람의 결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결정된 사항도 비교적 바뀌기 쉽다. 고려대 행정대학원의 조아인씨는 북한의 불예측성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과거 북한의 행태를 보면 불예측성이 잘 보인다. 갑자기 전격적인 방향 전환을 해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곤 했다. 의사결정이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이뤄진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개인에 의존하고, 개인은 매순간 측핵과 편도체의 경쟁 속에서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 북한의 행보가 어떨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은 뇌 속에서도 측핵과 편도체가 싸울 것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고 체제보장을 받으며 핵도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원하는 것이고, 이러한 희망을 품고 앞으로 긴 협상을 해나갈 것이다. 김정은이 우리 보통사람의 뇌와 동일한 구조를 가졌다면 계속해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파기하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슬금슬금 속이면서 시간을 끌 수 있을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이익이 될 때는 지킬 것이다. 어기는 것이 유리하면 어길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한국과 미국이 김정은에게 약속 이행이 이익이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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