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인사업무를 꿈꾸며 한 중견기업에 입사한 김모(31)씨는 일을 시작한지 5개월 만에 상사로부터 다른 부서로 이동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직무만을 보고 회사에 입사한 김씨에게 보직이동 명령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상사들을 찾아가 거듭 면담했지만 “회사가 너 하나만 배려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인사와 동떨어진 구매업무를 맡은 김씨는 맞지 않는 업무에 힘들어했고 6개월 뒤에 다시 영업관리 부서로 발령이 났다. 2년간 4개 부서를 전전하던 김씨는 지난달 회사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인사 직무에 전문성을 쌓으려 입사했는데 느닷없는 보직 이동에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며 “정년보장도 안 되는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고 부서 업무 중에도 고민이 이어져 사람이 폐인이 돼 갔다”고 고백했다.
원치 않은 인사이동에 따른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최근 원치 않은 보직이동에 따른 업무 적응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두 사람의 사례가 알려지며 부당한 보직이동은 사회적 문제로 관심을 받고 있다. 20년간 방송국에서 기자생활을 한 박모씨는 갑작스레 PD로 보직이 이동되자 달라진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50대였던 박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며 새 업무 적응을 힘들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공무원역시 보직이 변경된 뒤 상실감과 자책감을 토로하다 2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최근 두 사람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직장인들의 인사 스트레스는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9일 국내 양대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민주노총에 올해 접수된 부당 인사이동과 이로 인한 부당해고에 대한 상담 건수는 각각 640, 270여건에 달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부당 인사이동에 관한 노동 상담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며 “올해 전체 상담 중 15%가 부당 인사이동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는 임금관련 상담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도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직원의 경우 문제를 제기하는 편이지만 작은 직장일 때는 부당 인사를 당하더라도 조용히 퇴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당인사’에 대한 기준은 애매하다. 근로기준법 23조에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전직하지 못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통상 법원은 ‘업무상 필요성’과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 두 가지 측면을 비교해 부당함을 판단하지만 사실상 사용자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항목에 “사용자의 업무변경을 따른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고, 기존 판례도 사용자 인사권, 직무 재배치의 범위를 폭넓게 설정하고 있어 부당 인사이동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직 이동 스트레스가 논란이 됨에 따라 이를 줄일 수 있는 노동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근로자의 보직변경이 부당한지 판단은 회사가 가진 고유한 인사권 행사와 부당한 인사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고충처리위원회 같은 사내 조직을 통해 노동자 재배치 시 노사 간 소통을 강화하고 충분한 사전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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