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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높이 100m 제방 쌓아 빙하 유실 막자” 지구공학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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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29 14:05:29 수정 : 2018-03-29 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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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지구공학’ 제안 존 무어 베이징사범대 교수 이메일 인터뷰
‘인간의 오만한 도전인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인가.’

최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해수면 상승을 늦추기 위해 빙하를 지구공학으로 제어하자’는 글이 실렸다.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란, 기후변화에 맞서 햇빛이 지구에 흡수되는 양을 줄이거나 남아도는 탄소를 흡수하는 기술을 말한다. 성층권에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입자를 뿌린다거나 바다에 플랑크톤을 증식시켜 탄소를 흡수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지구를 대상으로 벌이는 초대형 실험인 셈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공학은 몇몇 과학자들의 극단적인 아이디어로 취급됐다. 변방에 있는 줄 알았던 지구공학이 지금은 기후학계의 중심으로 파고들고 있다. 네이처에 실린 ‘빙하 지구공학’은 지구공학 중에서도 비교적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다.

빙하 지구공학을 제안한 존 무어 베이징사범대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객관적인 설명을 듣기 위해 극지연구소의 김백민 책임연구원, 진경 선임연구원도 만났다.

◆‘빙붕’의 붕괴를 막아라

무어 교수가 제안한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빙하 앞바다에 제방(둔덕)을 쌓아 따뜻한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 것이다. 그린란드에 적용해볼 수 있다. 그린란드 서쪽의 야콥스하븐 빙하는 따뜻한 대서양과 맞닿아 있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 20세기 해수면 상승의 4%가 야콥스하븐 빙하 때문으로 추정된다.
존 무어 교수
무어 교수는 야콥스하븐 앞바다에 5㎞에 걸쳐 100미터 높이의 제방을 쌓아 난류가 덜 들어오게 하면 빙하의 후퇴를 막는 것은 물론 다시 자라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는 남극 빙붕을 인공섬으로 떠받치는 방법이 있다. 우리 눈에 남극은 고정불변의 대륙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남극 빙하는 땅(기반암) 위에 눈이 켜켜이 덧쌓인 것이어서 중력을 받아 서서히 바다로 흘러내려오고 있다. 바닷가로 떠밀린 빙하는 ‘빙붕’을 만난다. 이 빙붕은 빙하가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온난화로 빙붕이 버틸 힘이 약해지고 있다. 인공섬은 빙붕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마지막 방법은 빙하에서 기반암까지 구멍을 뚫어 빙하와 기반암 사이에 흐르는 물을 퍼올리거나 얼리는 것이다. 물은 마치 윤활유처럼 빙하가 더 빨리 바다로 미끄러지게 만들기 때문에 이 물을 없앤다면 빙속을 느리게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말은 쉽지만….’

무어 교수는 자못 진지했다. 예를 들어 그린란드 제방을 만들려면 약 0.1㎦의 자갈과 모래를 준설해야하는데, 수에즈 운하(1㎦ 준설)나 홍콩국제공항(0.3㎦ 매립) 건설과 비교하면 못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남극은 그린란드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만만찮은 작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네이처에 글을 쓴 이유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아이디어도 있으니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단 저희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고, 그 결과에 대해 피어리뷰(peer review·전문가 심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자세한 결과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빙하의 후퇴를 최대 수백년까지 늦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어 교수는 빙하 지구공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빙하의 후퇴를 막는다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빙하는 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은 온난화의 해법이 아니라 해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뿐이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고안된 지구공학과 비교하면 예상되는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는 적어도 10∼20년은 연구가 더 쌓여야 한다고 했다.

“결국에는 저희 방법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겠죠. 과학적 타당성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옳은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할 거고요. 빙하 지구공학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지면 그린란드에 제한적으로 실험해본 뒤 남극으로 확대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26억원을 투자한 중국 정부

지구공학은 오랫동안 과대망상, 미친 발상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2015년을 전후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연구소가 생기기 시작했고, 중국도 가세한 것이다.

무어 교수는 2015년 8월 발족한 중국지구공학연구(Chinese geoengineering research program)의 대표다. 여기에는 베이징사범대와 저장대의 기후학자들뿐 아니라 중국사회과학원, 중국 환경보호부 환경경제정책연구센터, 중국 기상청 관계자들도 폭넓게 참여한다.

“중국지구공학연구는 중국과학기술부로부터 1500만 위안(약 25억9000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과기부는 진행 상황을 살펴보긴 하지만 연구지침을 내리지는 않아요.”

이는 지금껏 어떤 정부보다 과감한 투자 규모다.

독일은 기초연구 지원을 주도하는 독일연구재단(DGF)이 2013년부터 지구공학 연구를 지원했다. ‘기후공학: 위험, 도전, 기회’(SPP 1689)라고 이름 붙은 이 프로젝트는 2019년까지 진행된다. 포츠담연구소와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독일 유수 연구기관과 스위스 취리히공대도 여기에 참여한다.

미국은 하버드대와 워싱턴대가 논의를 주도한다. 지난해 출범한 하버드 태양지구공학 연구프로그램은 750만 달러(약 80억5000만원)를 끌어모았다.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와 휼렛패커드 같은 민간기업이 출연했다. 하버드대는 지난해 여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기후변화 전문가 100여명을 초청해 지구공학 포럼을 열기도 했다.

여기에 참석한 켄 칼데이라 카네기연구소 박사는 세계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성층권에 입자를 살포해 태양열 흡수를 감소시키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지만, 기후변화가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며 “지난해 포럼에 참가한 과학자들도 지구공학 연구가 더 심도 있게 진행돼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지구공학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IPCC는 2021년 각 실무그룹 6차 보고서를 발행할 계획이다. 제1실무그룹(기후변화과학)의 총괄주저자로 선정된 이준이 부산대 교수는 “지구시스템 모델링을 통한 지구공학의 효과에 대한 논문들이 이제 막 나오고 있는데, 불확실하고 논쟁의 여지가 많다”며 “아직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지구공학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사회의 이런 분위기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부와 학계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티핑포인트 지났나

지구공학이 오랜 세월 변방에 머물렀던 건 발상이 황당해서만은 아니다. 지구를 놓고 실험하는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부작용이 닥칠 수 있어서다.

가령 황산염을 성층권에 뿌려 햇빛을 우주로 반사시킨다고 생각해보자. 지구 열평형이 깨져 초대형 태풍이 만들어지거나 극한 가뭄이 발생할 수 있다. 황산염은 오존층 파괴를 일으킨다.

남극 빙하 앞에 성공적으로 인공섬을 쌓는다고 치자. 따뜻한 해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어디론가 흘러 상상하지 못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럼에도 지구공학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그만큼 지구온난화가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김백민 책임연구원(왼쪽), 진경 선임연구원
김백민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막기에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했다.

“파리협정이 이번 세기 말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자고 했죠. 그렇지만 탄소는 여전히 위험할 정도로 많이 배출되고 있어요. 2030년이면 여름철 북극 해빙은 아예 사라지고 말 거예요. 지구공학 같은 인위적인 방법 말고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약속만으로 온난화를 막을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기술 검증을 해야 하는 거죠.”

무어 박사가 인공섬을 짓자고 한 서남극은 최근 온난화의 ‘핫플레이스’다. 서남극의 파인섬과 스웨이트 빙하는 연간 4㎞의 속도로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다. 서남극에는 전 세계 해수면을 1m 높일 정도의 빙하가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해저도시로 집어삼키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절반쯤 잠기게 할 수 있는 양이다.

진경 극지연구소 해수면변동예측사업단 선임연구원은 “서남극 효과는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것이어서 과거 예상보다 2∼3m까지도 더 해수면이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구공학적 접근에도 공감을 나타냈다.

“요즘 토목공사 기술을 보면 인공섬이나 제방을 짓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그 기술에 대해 철저히 검증해야겠죠. 해류를 바꿨을 때의 부작용, 비용 대비 효과 등 하나하나 따져서 전 세계적으로 지식을 축적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버드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나아가 실제로 이산화황이나 탄산칼슘을 성층권에 뿌리는 야심찬 실험을 계획 중이다. 올해 하반기 미 애리조나주 투싼에서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첫 시도가 된다.

지구공학은 인간의 오만한 도전인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인가.

칼데이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어쩌다 과학자들이 이런 극단적인 해결책(desperate measure)까지 들고 나왔을까’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구공학에 대해 국제사회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는 몰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인천=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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