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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종로구의 '30 스튜디오'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공개사과하고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패거리 예술감독. 사진=연합뉴스 |
성추행 논란으로 대한민국 연극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은 이윤택(65)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연출력과 기획력, 시대 흐름을 읽는 통찰력 등으로 한국 연극의 새장을 열었던 거물이다.
19일 이 전 예술감독은 서울 종로구의 '30 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행·관습적으로 생겨난 나쁜 행태였다"며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죄의식이 있으면서도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고개 숙이면서 '무한 책임'을 질 것을 약속했다.
앞서 이 전 예술감독은 여성 연극인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가려져 있던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자 "연극계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런 가운데 '블랙리스트 1호', '문재인 대통령과 50년 친구'라는 등 그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1968년 경남고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50년지기 문 대통령 "소풍 때 아픈 친구 엎어준 기억~"
경남 밀양이 고향인 이윤택(부산중 졸업)씨와 거제 출신 문재인(경남중 졸업) 대통령은 1968년 경남고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연극계에서 활동하던 이윤택씨가 정치와 잠깐 인연을 맺은 것도 친구 문 대통령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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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인 1968년 경남고 1년 때 문재인(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대통령과 같은 반 친구였던 이윤택(〃 〃 다섯번째) 전 연희단패거리 예술감독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2012년 18대 대선 때 이씨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TV 찬조연설자로 나서 문 후보의 인간적인 면을 전파해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이윤택씨는 "문 후보가 경남고 1학년 소풍 때 다리가 아픈 친구를 업고 오는 바람에 소풍 장소에 늦게 왔다"며 숨겨진 일화를 소개했다.
또 자신이 연희단거리패를 처음 만들었던 1986년 연극 입장권 100장을 맡아달랬더니 당시 변호사 신분이던 문 후보가 64장을 선뜻 팔아 준 이야기를 했다.
이씨는 "문 변호사가 판매대금 64만원(1장 1만원)과 손때가 꼬질꼬질한 팔다 남은 34장을 돌려줬다"며 친구를 위해 발품을 팔았을 문 후보를 회상했다.
▲찬조 연설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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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8대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위한 TV 찬조연설을 하고 있는 이윤택씨. |
이윤택씨는 친구를 위해 찬조연설을 한 뒤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 1호'에 오르는 등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2015년 1월 이씨는 시극 '꽃을 바치는 시간'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문화창작기금 희곡 분야에 응모, 100점 만점으로 1위에 올랐지만 최종 탈락해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문체부의 한 공무원은 "'지원배제 명단 중 한명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상부에 요청해 이윤택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 '블랙리스트 1호 이윤택'이란 소문이 문화계에 파다하게 퍼졌다.
▲과거 경력 등으로 문체부 장관 하마평도, 도종환 이후로 거론
이윤택씨는 문 대통령 의중,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문재인 정부 초기 문체부 장관 후보로 입에 오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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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씨는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 1호'이자 'A등급'으로 낙인 찍혔다. 사진=jtbc 캡처 |
문 대통령과의 50년 인연, 블랙리스트 피해 등에 따라 적임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과거 인터뷰에서 이씨는 "블랙리스트 단어가 불거져 나왔던 2016년 가을쯤 문 대통령과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라며 지난 대선 안팎으로 어떤 접촉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이씨는 "문 대통령이 쓸데없는 말이 나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 동창관계로 오히려 손해를 본 친구도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이씨에 대해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청산 작업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이를 수행하고 어느 시점에서 퇴임한다면 정치인이 아닌 문화인이 문체부 장관 후보로 제격인 만큼 문화·예술 진흥을 둘러싼 많은 아이디어를 가진 이씨가 중용될 수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미투'라는 시대적 부름에 따라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그 또한 막을 내리고 무대 뒷편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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