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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등학교가 주관하는 제48회 희중문학상에서 9년 만에 시 부문 대상인 ‘월탄상’을 수상한 박상현 군. |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 잘 익은 시(詩) 한 편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휘문고등학교 재학생 박상현 군이고, 시 제목은 ‘물렁하게 잘 익은 감’을 뜻하는 ‘연시(軟枾·고유어로는 연감)’다.
‘연시’는 휘문고등학교가 주관하고 한국 문단의 거목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휘문고 11회) 선생의 손자인 박동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후원하는 2016년 제48회 희중문학상(稀重文學賞) 대상인 ‘월탄상’ 수상작이다. 2016년 개교 110주년을 맞은 휘문고는 월탄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활동한 홍사용을 비롯해 김윤식(김영랑) 정지용 이태준 김유정 이무영 오장환 최태응 박재륜 방영웅 김훈 등 쟁쟁한 문학가를 다수 배출한 한국 문단의 산실이다.
희중문학상은 휘문고 설립자 하정(荷汀) 민영휘(閔泳徽) 선생의 고희 기념으로 교정에 세운 ‘희중당(稀重堂)’에서 명칭이 유래된 휘문고 교내 문학상으로 재학생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아 주고자 1961년 개교 55주년을 기념하여 월탄 선생 제안으로 창설되었다. 응모 부문은 시(시조), 소설(동화), 수필, 극(시나리오, 희곡, 뮤지컬 대본). 1976년부터 산문부와 운문부 중에서 수석 입선자(대상)에게 ‘월탄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대상과 우수작은 ‘희중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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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 선택, 언어 조탁, 비유 등 시작(詩作) 수준이 기성 작가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은 박상현 군의 희중문학상 대상 ‘월탄상’ 수상작 ‘연시’ 전문. |
희중문학상 심사위원회(권오성 김무겸 김성묵 김영희 김현철 박건호 신수빈 심승보 오준호 유형욱 이미현 이연익 이혜인 최호준)는 심사평에서 “연시는 서정문학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인간의 감정과 정서가 먹먹하게 담겨 있음은 물론, 운율 함축 비유 등에서 초연한 아름다움을 함뿍 머금고 있는 작품”이라고 상찬했다.
심사위원들은 또한 “인간은 특히 아직 얼어붙지 않은 순수하고 물렁한 존재일 때에, 연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맞으면 얼어붙게 된다. 그때 그이에게 주어진 자유라고는 넋을 놓아버린 자유뿐이다. 그리고 그이는 수 없는 ‘걸음’의 시간을 지나 ‘하이얀 밤’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 내고는 한다. 하나의 연시(戀詩)를”이라고 썼다.
휘문고 교지는 박 군의 연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연시는 ‘물렁하게 잘 익은 감’이다. 연시의 껍질을 벗기고 숟가락으로 움푹 떠먹으면 ‘꿀’ 같은 과육에서 하나하나의 ‘이슬’이 느껴진다. 이 달근한 맛을 접하면, 그 ‘넋을 놓아버리게’ 할 정도의 ‘달근’한 맛을 접하면, 얼마간 이를 접한 사람도 그 맛에 물렁하게 흐물흐물해져 버린다. 연시는 가을이 제철이다. 연시로서는 겨울을 맞을 수가 없다. 곶감과 같이 수분을 날린 채 겨울을 맞이하는 운명을 택하지 않는다면, 연시로서 맞는 겨울은 곧 존재 가치의 소멸이라는 현실과 맞서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의 연시는, 얼어붙고 만다. 수분을 날리고 겨울을 맞는 대신, ‘눈에 잠긴다’. 그리고 ‘뭉근한 그리움’으로, 밤을 맞는 운명을 택한다. 왜... 왜... 연시는 얼어붙는가? 얼어붙는..., 얼어붙는 경험을, 얼어붙는 경험을 인간은 언제 경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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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3에 올라가 잠시 쉬지만, 기회가 되면 계속 시를 쓰고 싶다”는 박상현 군. |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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